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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첫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 아노아르

등록 2007-07-24 20:05수정 2007-07-24 20:08

첫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 아노아르
첫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 아노아르
“아직 할일 많은데 혼자 떠나서 미안”
고달픈 ‘코리안드림’ 11년째
비자문제로 방글라데시 귀국
“학생·시민 지지 모습에 감동
국제연대로 계속 권리찾기”

방글라데시에서 9명의 형제들과 자랐던 25살 청년은 1996년 5월 ‘88 올림픽의 나라’ 한국에 왔다. 3개월짜리 관광비자만 손에 쥔 그는 일을 할 수 없는 신분이었지만, 브로커의 소개로 경기 안양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했다. “길어야 3년, 하루 빨리 돈을 벌어 돌아가겠다”고 작정했던 타향살이는 어느새 11년째가 됐다. 거칠었던 세월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젊은이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투사로 바꿔놨다.

2005년 4월, 국내 처음으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일궈냈던 아노아르 후세인(36·사진)씨가 오는 26일 고국 방글라데시로 돌아간다. 비자를 연장하기도 쉽지 않고 타향살이에 만신창이가 된 몸도 보살펴야 했기에 내린 ‘힘든’ 결정이었다.

법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노동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오는 8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떠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은데 혼자 떠나게 돼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힘들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이주노동자운동에 뛰어드는 데 큰 결심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서울 성수동 섬유공장에서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도 고작 70만원을 받았다”며 “그나마 3개월이 넘도록 체불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건 욕설과 하대 뿐이었다. 공장 근처에서 만난 각기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은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뭉칠 수 있었다. “인간 대접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뒤 정부는 당시 이주노동자의 80%에 이르는 미등록 체류자 가운데 선별적으로 22만7천여명에게만 합법화 조처를 하고, 12만여명은 자진 출국하도록 했다. 정부는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는 10만여명은 강제추방했다. 11월 아노아르씨 등 이주노동자 100여명은 강제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380일 동안 계속된 지난한 싸움. 그는 “수많은 학생·시민들이 지지해 주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며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다, 싸워봤자 소용 없다’는 생각을 모두 씻었다”고 말했다. 투쟁은 이주노동자노조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그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5년 4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초대 위원장에 올랐던 그는 20일 만에 경찰에 체포돼 1년 동안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됐다. 반말을 듣고 24시간 감시를 당하는 그곳에서, 그는 살이 8㎏이나 빠졌다. 그는 “옆 사람의 모든 행동이 못마땅하고,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곳을 나와서도 한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난의 시간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방글라데시에 가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노동·사회운동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 찾기 작업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디에 있든 국제적 연대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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