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낮 대구 삼덕2가동 경북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40~50대 여성 간병인들이 “10년 동안 일한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옷에 두르고 점심 도시락을 먹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의료연대 대구지역지부 준비위원회 제공
경북대병원, 사실상 10년 고용 해제 외주화 요구
1000원짜리 직원식당 이용마저 금지시켜
“병원 비정규직보호법 부담 피하기” 비판 목소리
1000원짜리 직원식당 이용마저 금지시켜
“병원 비정규직보호법 부담 피하기” 비판 목소리
밥을 먹는다. 환자의 가래를 뽑고 대소변을 받던 아주머니들이다. 밥 먹는 일이 ‘시위’다. 하루 12시간에 일당 3만5천원을 받는 고된 일자리를 지키려는 ‘서글픈 항의’다.
16일 대구광역시 경북대학교병원의 본관 로비에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간병인 40여명이 모여들었다.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밥 한 덩이, 호박볶음, 김치…. 이들은 지난달 9일부터 40일 가까이 차가운 로비 바닥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다. 경북대병원이 두 달 전부터 끼니당 1천원인 직원식당 식권 사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3만5천원 일당에 4천~5천원짜리 외부 밥값은 너무 버겁다.
사실 간병인들의 ‘식권’은 ‘일자리’ 문제다. 경북대병원은 1997년 직접 간병인 모집에 나섰다. 간병인 모임 대표인 석명옥(56)씨도 이때 동료 50여명과 함께 병원에 들어섰다. 면접을 거쳤고, 해마다 6월에 갱신되는 ‘간병인 약정서’에 도장을 찍었다. 병원은 신분증을 지급했고, 간병복을 입게 했고, 간병료와 근무 시간을 명시했다. 60살 정년도 정했다. 돈은 환자한테서 받았지만, 병원은 이들에게 고용주였다.
이런 병원의 태도가 바뀐 것은 최근 몇 해 사이다. 병원은 사용자로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고리를 끊기 시작했다. 병원은 2004년을 마지막으로 모집 업무를 간병인 모임에 넘겼다. 지난해 6월에는 간병인소개소를 만들어 사업자등록을 하라고 요구했고, 올 6월에는 사무실을 뺏고 직원식당 이용도 금지했다. 현재는 “기존 간병인들의 독점을 깨야 한다”면서, 다른 유료 소개소 연락처를 적은 공지문을 입원 환자에게 돌린다.
하지만 기존 간병인 100여명은 “병원이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말한다. 병원 노조의 이영숙 교육부장은 “최근 임단협에서 간병인 식권 발급 등을 요구하자, 앞으로 (간병인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 어찌 할 테냐고 말했다”며 “비정규직 보호법 등 사회 분위기 때문에 병원이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 쪽은 “간병인 약정서는 애초 고용계약이 아니었고, 지난해부터는 약정서 작성도 중단했다”며 “경쟁을 통해 간병의 질이 높아지도록 여러 소개소가 들어오게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간병인의 지위가 이처럼 흔들리면, 이들은 ‘벼룩의 간을 빼먹는’ 유료 소개소의 손아귀로 떨어진다. 간병인 유료 소개소는 △법정 소개료 초과 징수 △장기 간병 알선 때 웃돈 요구 △교육비·가입비 등 각종 수수료 뜯어내기 등으로 악명이 높다. 그만큼 질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어가는 셈이다. 현재 의료기관에서는 하루 평균 3만여명의 간병인이 활동하고, 관련 교육을 받은 이는 22만명에 이른다. 기획예산처와 보건복지부 등은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에 따라 2010년까지 간병 분야에서만 13만4천개 일자리의 추가 창출을 내다보고 있다.
문설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교육부장은 “간병 유료 소개소는 4600여개인데 대안적인 무료 소개소는 37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며 “차세대 일자리로 사회서비스 분야를 키우겠다는데, 한 달 70만~100만원의 간병 일자리는 노동조건과 삶의 질을 더욱 열악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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