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외주용역업체로 쫓겨날건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들 무슨 소용입니까?”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 ㄱ(31)씨는 10일 순찰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돌다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7만명을 정규직화했다”며 생색내고 있지만, 정작 무기계약직 전환자인 자신은 언제 다시 외주업체로 쫓겨날 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는 탓이다. 공기업인 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지난 7월 ‘현장직’이라는 새 직군을 만들어 도로정비원, 사무원 등 비정규직 485명을 정규직으로 편입시켰다. ㄱ씨처럼 2004년부터 고속도로 순찰업무를 맡아온 안전순찰원 304명도 여기에 포함됐다.
그러나 ㄱ씨와 동료들은 정규직이 된 것에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회사가 2012년까지 안전순찰업무를 전면 외주화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도로공사는 당장 다음달 초 신설될 보은지사를 비롯해 올해에만 52개 지사 가운데 11곳을 외주용역업체 넘길 계획이다. 도로공사 교통처 김동혁 차장은 “경영효율성을 위해 몇년 전부터 외주화를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이미 90% 이상 외주화된 도로공사 직영영업소 통행료 징수업무와 마찬가지로 경영방침상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2006년 노사공동연구팀을 꾸려 의견을 수렴한 뒤 지난 6월 노조와 “비정규직 안전순찰원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뒤, 외주화 시행과 병행해 연차적으로 타업무 전환, 고용승계 등을 통해 고용안정을 도모한다”고 합의했다.
문제는 회사와의 합의 과정에 비정규직 안전순찰원들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안전순찰원 260여명은 무기계약직 전환 뒤 ‘현장직 노조’를 설립하고 회사의 외주화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ㄱ씨는 “우리가 아닌 정규직 노조와의 합의는 무의미하다”며 “외주업체로 가면 언제 해고될지 알 수 없는 고용불안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회사쪽은 “고용을 보장해줄테니 외주업체로 옮기라”며 안전순찰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회사는 ‘강제사항’이 아니라 ‘희망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외주업체로 옮기지 않는 사람은 운전·도로정비 등 유사업무로 전환배치하고, 외주업체로 옮긴 사람에게는 도로공사 신규채용시 우선권을 주고 외주업체 근무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등의 ‘대책’도 내놨다. 그러나 현장직 노조는 “기존 인력운영 사정을 볼 때 전환배치는 거의 불가능하고, 외주업체로 옮기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공공기관이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공공부문 비정규대책 추진단 관계자는 “크게 보면 정부대책과 어긋나지만 이미 결정된 회사 내 경영방침까지 간섭할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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