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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또 분신…비정규직 ‘벼랑끝 외침’

등록 2007-10-31 21:10수정 2007-11-01 16:31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
서울우유 운송트럭 운전 고철환씨 3도 화상 중태
10년간 운송료 동결 노조 설립…회사는 대화 거부
한계점 넘어선 비정규직 “극한 투쟁 상황 내몰아”

31일 오전 1시께. 새벽바람을 맞으며 2.5톤짜리 우유 배달차를 몰았던 고아무개(52)씨와 박아무개(57)씨는 “함께 죽자”며 고씨의 트럭에 ‘우유’ 대신 ‘휘발유’를 싣고 서울우유 안산공장 정문 앞으로 차를 몰았다. 공장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서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인 지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차가 공장 정문 앞에 멈춰서자 두 사람은 차 위로 올라가 휘발유를 뿌렸다. 곧 불길이 치솟았다. 휘발유가 거의 묻지 않았던 박씨는 화를 면했지만, 고씨는 3도 화상을 입어 중태다. 인천지역 건설노조 조합원 정해진씨에 이어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비정규 노동자의 ‘분신’이다.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 조합원 고철환씨 분신에 항의하려 모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서울우유 안산공장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제공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 조합원 고철환씨 분신에 항의하려 모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서울우유 안산공장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제공
목숨까지 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일용직이나 특수고용직, 용역직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조활동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고씨는 서울우유협동조합과 월 300만∼400만원을 받는 계약을 맺고 자기 차로 우유를 나르는,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였다. 하루 휴무하면 10만원이 깎이는 탓에 고씨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나날이 운행시간·거리는 늘어났지만 10년 동안 운송료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같은 처지에 있던 안산·거창·양주 등지의 우유배달차 노동자 380여명이 지난해 운수노조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를 설립했다. 이어 지난 7월 서울우유 쪽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넉 달째 노조를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우유는 31일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화물 차주들의 노조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고 밝혔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황대섭 교육부장은 “회사는 노조가 생겨나자 노조원 네 명을 무연고지로 보내고, 노조원들에게 ‘화물연대 탈퇴’ 각서를 강요하며 노조를 탄압했다”며 “회사가 고씨를 분신으로 몰아간 셈”이라고 주장했다.

진숙경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원 연구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격렬한 투쟁은 이미 예고된 일”이라며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노조 활동이 제도화되지 못하면 극한 투쟁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도 “40~50대 남성 가장들이 잇달아 분신을 기도했다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라며 “이른 시일 안에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했지만, 정작 법과 제도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해 생기는 불가피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씨와 같은 화물 지입차주나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몇해째 논의만 무성할 뿐 아무런 진전이 없다.

한편, 이랜드나 코스콤 등 비정규직 문제로 회사 쪽과 장기 갈등을 빚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 양상도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50일째에 접어든 코스콤 비정규지부는 지난 29일 새벽 단체교섭을 요구하려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용역 경비원들에게 끌려나와 경찰에 넘겨졌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 8m 높이 철제탑에선 1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노조원 이아무개씨가 쓰러져 응급실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앞 폐쇄회로텔레비전 전송탑에서 고공시위를 시작한 뉴코아노조 간부 박아무개씨는 9일이 지난 지금까지 탑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황예랑 황보연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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