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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연대투쟁 말해놓고 매번 꼬리 내려"

등록 2005-04-18 18:59수정 2005-04-18 18:59


(하) 정규직 역할은?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무관심에 일침

노·사·정이 각기 주장하는 ‘비정규직 해법’에서 이른바 ‘정규직의 몫’은 법안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정규직의 ‘양보’나 ‘연대투쟁’은 법안의 내용을 뿌리부터 바꿔놓을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용자단체들은 “정규직의 양보가 있다면 비정규직 법안에서도 노동계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누누이 밝히고 있다. 반면 양대노총은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까지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을 조직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규직의 구실과 책임이 무엇이냐’는 논란은 법안 조율 이상의 ‘장외 경기’인 셈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서 ‘정규직’의 구실과 책임은 무엇일까? 의외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로 이에 무관심했다.

“주변 동료들이 비정규직 법안이 어떻게 개정되더라도 ‘내 문제가 아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기아자동차 노조 광주공장지부 대의원) “인력감축 땐 비정규직들부터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료들 사이에 가장 큰 관심은 비정규직법안보다는 연말에 추가로 지급될 성과급 액수인 것 같습니다.”(현대중공업의 한 정규직 노동자)
▲ 전남대병원 하청업체 미화원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간부 등 100여 명이 18일 오후 2시30분께 광주시 북구 중흥동 광주역 광장에서 빗자루를 들고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광주/정대하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타까움과 실망은 컸다. 현대자동차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40)는 “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처음엔 ‘연대투쟁’을 얘기하다가도 매번 꼬리를 내리곤 한다”며 “정규직들이 우리들을 자신들의 고용을 지켜줄 ‘범퍼’(안전판)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비정규직지부 권혜영 위원장은 “비정규직의 처지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것”고 안타까워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서, 사용자단체들과 보수언론의 논리와 주장도 만만치 않은 힘을 얻고 있다.

사용자단체들은 “정규직 중심인 양대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에 집착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를 고착시키고 있다”며 “기업들은 강력한 노조에 고임금과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바람에 자구책으로 비정규직을 늘려 왔다”고 말한다.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들은 지난달 30일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그 재원만큼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공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을 정도다.

노동운동의 중심인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의 미지근한 태도와 맞물려 이런 사용자쪽의 주장이 힘을 잃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규직의 ‘양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확실한 ‘연대투쟁’,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매출과 이익 증가율이 인건비 증가율을 훨씬 웃돌고 있는데도, 사용자단체들은 책임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는 궤변을 펴고 있다”면서도 “정규직의 무관심과 소극성이 궤변이 통하는 ‘사태’에 일조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기업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이중 노무관리를 통해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노동자들에 돌아갈 몫은 줄이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정찬호 총무기획국장도 “비정규직 법안이 개정되면 26개 파견업종이 없어져 정규직이 일하던 라인에 비정규직이 투입될 수 있다”며 “이번 법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망라한 전체 노동자의 문제라는 점을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노조가 방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대기업인 금호타이어 등 일부 대기업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단체협약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이런 ‘연대’ 사례의 확산 속도는 아주 완만하다.

그런 점에서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의 토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노동운동은 정풍과 혁신의 요구를 받고 있다. 연대에 기초한 운동으로 현장 운동을 혁신하지 않으면 노조운동은 고립된 소수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 전투주의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의 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의 정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양상우 정대하 유신재 기자 ysw@hani.co.kr


잘못된 상식
한국 노동시장 유연성 낮다?-> 포브스 재작년 OECD국중 3위 보도
노조가 고용 유연화 걸림돌?-> 노조 있는 사업체 인원감축률 높아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내놓으며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경제적 측면의 입법 배경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고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므로 경제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인 비정규직이라도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등 상당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추론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만 해도 지난해 “‘고용보호법제상 경직성 지표’에서 한국이 28개 회원국 가운데 12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미국의 <포브스>가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OECD 20개 국가 가운데 미국, 캐나다에 이어 3위’라고 보도한 것도 한 실례다.

‘매우 경직적’이라는 한국의 정규직도 세계 제1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랑하는 미국 노동자(정규직과 비정규직 포함)와 비교해도 고용 변동성, 노동시간 변동성, 임금 변동성에서 모두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노조가 노동시장 유연화의 장애요인이라는 주장도 따져볼 일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노동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노동시장 유연성의 국제비교(2001)”만 보더라도, 30대 재벌기업과 공기업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종업원 수는 1997년 10월 156만여명에서 2001년 4월 124만여명으로 줄었다. 3년 반 동안 인력이 20% 감축된 셈이다.

노조가 있는 사업체에서는 97년 10월 85만9천명에서 2001년 4월 65만5천명으로 20만 4천명(감축률 23.7%) 감축된 반면, 노조가 없는 사업체에서는 10만8천명(감축률 15.4%)이 줄었다. 노조가 구조조정을 위한 인력감축 및 노동시장 유연화의 장애요인이라는 사용자 쪽 주장에 의문을 낳은 대목이다.

이들은 2003년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등의 연구를 근거로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체 인건비 비중은 대폭 하락했지만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고용으로 인한 기업의 수익성과 경쟁력 제고도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게 국가경제적으로 유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소득을 무조건 동결하는 것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남용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가 인적 자본 투자를 저해하고 기술혁신의 여건을 악화시킨다는 평범한 진실에 정부와 사용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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