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6일 저녁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 마련된 영정 앞에서 황씨의 어머니 박상옥(48)씨가 오열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피해 제보 15건으로 늘어 노동부 건강실태조사 나서
“제가 당사자입니다. 1991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96년 퇴사했어요. 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구요.”
지난 1일 새벽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 카페(cafe.daum.net/samsunglabor)에 올라온 글이다. 글을 쓴 ㄱ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러 여의도 성모병원에 갔다가,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여사원이 같은 병원에서 백혈병 치료중이라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며 “내 백혈병도 삼성에서 한 일과 관련이 있을까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대책위에서 일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6일 “ㄱ씨처럼 새로운 피해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반도체공장의 백혈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가 빼는 작업을 담당했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난해 3월 무렵이다. 황씨의 유족은 “화학물질 노출이 백혈병의 원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고, 11월에는 대책위가 꾸려졌다. 당시 확인된 백혈병 발병자는 6명이었다.
그 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얻은 ‘의문의 백혈병’ 사례들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1983년 입사해 2006년 2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중인 남성,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때문에 퇴사해 2004년 1월 숨진 여성, 일반암에 걸린 엔지니어 등의 제보가 대책위로 쏟아졌다. 이렇게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사례는 3개여월 사이 9건이 늘어 15건이다.
이처럼 의혹이 확산되자 노동부는 지난달부터 13개 반도체업체의 백혈병 발생 및 주요 화학물질 취급현황 등을 점검하는 건강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김은아 팀장은 “올해 연구사업으로 ‘반도체공장 노동자 건강실태’에 대한 역학조사를 펴기로 했고, 연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작업과 백혈병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공유정옥 산업의학과 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관련된 연구사례가 워낙 적은 데다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암 발생률이 높다는 해외 연구사례가 있긴 하지만 원인이 되는 정확한 유해물질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또 다른 피해노동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평균 백혈병 발병률과 비교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발병률이 높지 않다”고 밝혔으나, 대책위 쪽은 “백혈병은 소아, 노인에게 많이 생기는 병인데, 성별·연령 보정 없이 전체 백혈병 발병률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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