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사태는 노조가 죽거나, 회사가 죽어야 끝날 것이다.”
김경욱 이랜드 일반 노조 위원장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랜드그룹 노·사는 지난해 6월 파업이 시작된 뒤로 수십 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고용 보장, 파업 참가자 징계·해고 문제 등 핵심 쟁점들에서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한 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간간히 이어지던 교섭도 4월 초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노·사 양쪽이 대립하고 있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 여부다. 노조는 ‘3개월 이상 일한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는 반면, 회사는 단체협약에서 약속했던 ‘18개월 이상 근무자’에게만 할 수 있다는 태도다. 김 위원장은 “최근 회사가 18개월 이상 근무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을 뿐, 교섭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둘째는 파업을 촉발시켰던 계산 업무 등의 외주 용역화 방침이다. 회사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외주화라는 편법으로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피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자, 지난해 7월 “외주화 철회”를 약속하며 한 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노조는 “외주화 철회 약속의 구체적 내용이 없고, 신규 매장 8~10곳과 일부 부서의 외주화는 지금도 추진 중”이라고 반박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파업 참가자들 징계·해고와 손해배상 청구소송 문제다. 노조는 “모두 철회해야 한다”고, 회사는 “불법 행위자는 선처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뉴코아 노사 협상은 타결 직전, 회사쪽이 “민·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노조도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내지 말라”고 요구해 결렬되기도 했다.
‘평행선’만 긋는 상황에서도 노사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박양수 뉴코아 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상당한 자금 압박때문에 홍콩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데, 이를 막으려 4월 말 홍콩 원정투쟁을 떠나는 등 배수진을 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회사가 더 내놓을 양보 카드는 없다. 장기 파업으로 회사 이미지 타격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노사 자율에 맡긴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조기해결을 위해 어느 한쪽에 양보를 요구하거나 하지 않겠다”며 “교섭을 주선할 수는 있지만, 노동부가 중재안을 내놓거나 조율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노·사 대표자들을 만나 ‘집중 교섭’을 제안했던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달리,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노사 자율 해결’만 거듭 강조하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정부나 사용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다면, 노조가 명뷴과 실리 사이에서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정부가 ‘공정한 조정자’ 구실을 하려면 비정규 노동자 재계약 등 첨예한 쟁점에 대안을 내놔야 한다”며 “이랜드 사태가 앞으로 비정규직 대책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와 공정한 중재 틀을 만들어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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