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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 “꿈은 하나 정규직화” 목숨 건 외침

등록 2008-07-27 20:08수정 2008-07-27 22:16

40일 넘는 오랜 단식농성으로 수척해진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오른쪽)과 조합원 유흥희씨가 지난 25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앞에서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여는 조합원들을 농성 장소인 경비실 옥상 위에서 내려다보며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40일 넘는 오랜 단식농성으로 수척해진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오른쪽)과 조합원 유흥희씨가 지난 25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앞에서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여는 조합원들을 농성 장소인 경비실 옥상 위에서 내려다보며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
단식 48일 파업 1070일째
“평생 병자된다” 의사 경고에도 투쟁의지
교섭 유보 소식에 실낱 희망도 희미해져
불법파견 책임 사쪽은 “직접고용 안된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홍희 조합원 뒤쪽으로 회사 굴뚝이 높이 솟아 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홍희 조합원 뒤쪽으로 회사 굴뚝이 높이 솟아 있다.

“비정규직의 땀을 잊고 산 죄를 참회하며 65번째 절을 올립니다.”

지난 25일 밤 10시 서울 금천구 디지털산업단지, 굳게 닫힌 기륭전자 철문 앞. 효진 스님이 쓴 108개 기원문을 읽어 내려가는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 최은미(24)씨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에 맞춰 108배를 이어가는 종교·사회단체 인사 40여명의 몸도, 쏟아지는 빗줄기와 땀으로 이내 흠뻑 젖었다.

이날로 45일째 단식 중인 유흥희(38)씨는 이들의 108배를 ‘소리’로만 들어야 했다. 단식 40일을 넘기면서 눈에 띄게 몸 상태가 나빠진 탓이다. 하루 두세 차례 텐트에서 나와 옥상 철조망 사이에 앉거나 서 있는 게 고작이다. 유씨는 6월11일 단식을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땅’을 밟지 않았다. 김소연(39)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과 함께 정문 옆 경비실 옥상에 올라오면서 “회사가 직접 고용을 약속할 때까지 쓰러져도 내려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했다. 46㎏이던 몸무게는 10㎏ 넘게 줄었고, 혈압과 맥박도 떨어졌다. 2006년에도 30일 동안 단식했던 김소연 분회장의 머리는 영양부족으로 염증이 생겨, 검붉은 딱지투성이가 됐다. 정문 앞 컨테이너에서 단식 중인 오석순(43)씨는 최근 의사한테서 “당장 단식을 풀지 않으면 평생 신장 투석하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들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네 명의 목숨을 건 요구는 “기륭전자가 집적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28일로 1070일째다. 철탑에서 고공농성도 벌이고, 다리에도 매달리고, 삼보일배도 했다. 그러나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회사와 당시 대표이사는 각각 500만원 벌금을 냈을 뿐,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들이 지난 5월 시청 앞 고공농성을 벌이고서야 회사는 교섭에 다시 나왔다. 6월 초엔 노사가 ‘자회사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뒤 1년 뒤 직접 고용한다’는 데 잠정 합의해, ‘희망의 빛’도 잠시 비쳤다. 그러나 회사는 며칠 뒤 “차장급 이상 직원 90% 이상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약속을 번복했다. 이에 조합원 10명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지난 10일, 조합원들은 국회 한나라당 항의농성을 벌였다. 집단 단식에도 꿈쩍 않던 회사는 그제야 다시 교섭에 나왔다. 이번엔 뒤로 물러서 있던 최동렬 기륭전자 회장도 끌어냈다. 최 회장과 홍준표·김성태 의원, 장의성 서울지방노동청장이 노조에 제시할 새로운 안을 만들었다. ‘오는 11월까지 새 회사를 설립해 조합원들과 12월에 1년 근로계약을 맺고, 정규직화는 내년 12월 신설 회사와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성격도, 주체도 불분명한 신설 회사만 있고, 불법 파견에 책임이 있는 기륭전자는 쏙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6월 잠정 합의안과 달리, ‘직접 고용 약속’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생산라인을 폐쇄했고 지난 3월 구조조정도 했다며, 복직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권순만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회사가 노조의 교섭 재개 요청을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나섰던 노동부와 한나라당도 다시 물러섰다.

단식 농성자들에게 실낱같은 ‘희망’도 희미해져 간다. 유흥희씨는 “몸이 힘든 것보다도, 교섭이 풀릴 듯하다가 안 풀리는 게 가장 답답하다”며 “그래도 적당히 타협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구로공단 노동자 97%가 비정규직이에요. 파견 노동자가 아니면 취업할 곳이 없는데, 우리처럼 불법 파견 판정을 받고도 승리하지 못하면 누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겠어요? 회사는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우린 목숨을 걸었어요. 목숨이 자존심을 이길 겁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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