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에선 2~3차 협력업체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잘려나가는지 파악도 안 될 정도다.”
지난 9일 ‘경제위기로 인한 비정규직 우선해고’와 관련된 금속노조 토론회에 참석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지회 관계자는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해고가 특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선 에쿠스 단종에 따라 비정규직 115명이 계약 해지됐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나 비정규지회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제조업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국민은행도 계약직 노동자 450여명한테 ‘계약 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이들의 빈 자리는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55살 이상 정규직으로 채워진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처럼 비정규직들이 대규모로 계약 해지당하고 있지만 정규직 노조가 앞장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주장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총고용 보장”이란 구호를 내걸지만, 휴업이나 배치 전환처럼 자신들의 목줄이 오락가락하는 시점에 하청업체나 계약직의 고용 문제로까지 싸울 여력이 안 되는 탓이다. 박점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은 “토론회 때 현대자동차지부가 발제자로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막판에 ‘못 오겠다’고 했다”며 “그만큼 노조 내부 고민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번 기회에 비정규직과의 연대로 ‘일자리 나누기’를 만들어 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1998년처럼 비정규직한테 모든 고통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고통 분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구호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연대를 강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며 “정규직 노동시간을 비정규직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에선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고용 보장을 위한 기금으로 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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