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경북 경주시 발레오 전장시스템 코리아의 2공장에서, 일거리가 없는 노동자들이 가동을 멈춘 생산설비 근처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고통분담 나선 ‘발레오만도 노조’
지난 15일 경북 경주시 ㈜발레오 전장시스템 코리아의 2공장은 대부분 생산설비들이 멈춰 있었다. 다만 지난해 12월 1공장에서 옮겨온 모터 생산설비 등 일부만이 돌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추진한 ‘일거리 나누기’의 결과다.
발레오 전장시스템은 자동차 전장부품을 생산하는 직원 900여명의 회사다. 몇 년 동안 승용차부품을 생산하는 1공장은 물량이 넘친 반면, 상용차부품을 만드는 2공장은 물량이 없었다. 1공장 노동자들은 잔업·특근을 3시간 넘게 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고, 2공장에선 기본 노동시간 채우기도 빠듯했다. 고정급 비중이 낮은 자동차산업에선 잔업·특근을 못하면 급여가 확 준다. 두 공장 임금은 연 1천만원 넘게 벌어졌다. 2공장 노동자들 사이에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번졌다.
이에 전국금속노동조합 발레오만도지회는 지난해 11월 회사에 “공장별·라인별 노동시간을 평준화하자”고 요구했다. 라인별 물량을 같은 수준으로 나눠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맞추자는 것이었다. 회사도 이에 동의했다. 지난해 12월 먼저 1공장 모터 생산설비 일부를 2공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일거리 나누기’ 첫발을 떼자마자 경제위기 한파가 거세게 닥쳤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출이 20~25% 줄기 시작했다. 주문 물량이 많던 1공장도 특근·잔업을 줄여야 할 판이다. 라인별 물량 평준화를 위한 설비 투자 계획도 돈줄이 막혀 보류됐다.
회사는 “임금 동결·삭감을 해 줘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태도지만, 2공장의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줄어 이미 월 60만~100만원씩 임금이 깎이고 있는데, 뭘 더 양보하느냐”고 항변했다. 임금 양보 요구는 ‘이중 부담’이라는 것이다. 노조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일자리 나누기 논의에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영 상황의 투명한 공개 △노동자 고통분담에 대한 보상 약속 △고정급 비중 제고로 생활임금 보장 등이다.
노사는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1999년 뼈아프고 소중한 경험을 한 바 있다. 만도기계 전장부문 사업부가 한라그룹 부도로 프랑스기업 발레오로 인수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려 임금 삭감을 견뎠다. 노조는 그 뒤 몇 년에 걸쳐 회사로부터 임금 삭감분의 95% 가량을 돌려받았다. 노조가 사외감사를 선임해 경영 상황을 살피고 있기도 하다.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 부지회장은 “무작정 ‘어려우니 양보하라’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미 임금 삭감을 감내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폭력일 수 있다”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노사가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경주/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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