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지부 유지’ 투표로 내홍…“기득권 대공장 이기주의” 논란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가 오는 10월 기업별 지부를 지역별 지부로 바꾸는 사실상의 산별노조 전환을 앞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이 지역지부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총회 투표를 소집하고, 이를 막는 조합원들과 충돌하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
기아차노조 사수 대책위원회가 소집한 총회 투표는 지난 23일 경기 광명시 기아차 소하리공장에서 시작됐다. 26~27일엔 광주공장으로 이어졌으나, 노조원들이 투표함을 실은 차량의 공장 진입을 막고 투표 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등 ‘노-노 마찰’이 이어졌다.
이번 총회 투표를 주도한 박홍귀 기아차노조 사수 대책위원장은 “정상적인 총회 진행을 막는 기아차노조 집행부의 행태는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아차노조가 지역지부로 전환하면 조직력과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져 결국 기아차는 물론 하청업체, 비정규직 조합원의 권익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수 대책위는 이번 투표에 소하리공장 조합원 2800명(총 5300명), 광주공장 2000명(총 6500명) 등이 참여했다며, 다음달 10일까지 화성공장과 정비·판매 부문의 투표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아차노조 집행부는 지난 20일 대의원총회를 열어 총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결의했다. 김욱 기아차노조 대외협력실장은 “소집권자가 총회 신고를 하지 않는 등 사실상 불법 총회”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조직화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기아차 노조를 비롯한 산하 5개 대기업 노조를 전국 16개 지역노조로 분리하기로 2006년 12월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 기아차노조가 처음으로 기업지부를 해산하고 지역지부로 전환하게 된다. 기아차노조가 지역지부로 전환되면, 소하리공장은 금속노조 서울지부나 경기지부 등의 지회로, 광주공장은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지회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다른 하청업체 조합원 등과 함께 같은 지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호 금속노조 정치부장은 “지역지부 전환에 일부 조합원들이 거부감을 갖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지역지부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지역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수대책위의 활동에는 대공장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역지부 전환을 앞두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며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점에서 방향을 잘 잡았지만, 대기업 노동자의 보수적 속성이 강한 한국적 상황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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