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앞줄 오른쪽 다섯째)와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앞줄 오른쪽 넷째) 등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노조가 협상 재개를 요청한 만큼 회사 쪽은 결렬된 노사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평택/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합리적 조정 없는 밀어붙이기 ‘고질적 현상’
전략부재 정부는 방관적 태도로 갈등 증폭
“불황대비 기금 조성, 고용안정 장치 마련을”
전략부재 정부는 방관적 태도로 갈등 증폭
“불황대비 기금 조성, 고용안정 장치 마련을”
자동차 구조조정 반복 왜?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갈등이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고질적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경직된 구조조정 해법과 단기적인 실리만 좇는 노사관계 관행,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등이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완성차업체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사갈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치달았던 사례는 쌍용차 사태가 처음이 아니다. 1998년과 2001년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에서 벌어졌던 파업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노사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했고, 노조는 극한투쟁에 맞서면서 갈등이 장기화됐다.
유독 완성차업체에서 구조조정 갈등이 두드러지는 것은 산업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기가 나빠지면 내구재 소비가 급감하면서 가장 큰 부침을 겪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여기에 산업연관성 및 고용효과도 다른 산업에 견줘 훨씬 크다. 쌍용차만 해도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20여만명이 고용돼 있다. 조형제 울산대 교수(사회학)는 “자동차는 국내 산업 가운데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데다 강력한 노조가 조직돼 있기 때문에 노사갈등도 격렬한 양상을 보여왔다”고 분석했다.
정리해고에 집착한 경영진의 근시안적 구조조정은 이런 갈등을 한층 키워왔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경영진이 구조조정에 대한 합리적 매뉴얼을 마련하기보다는 정부와 채권단 등의 압박에 당장 가시화할 수 있는 정리해고 숫자 맞추기에만 집착해 왔다”며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편익에 비해 갈등비용이 많고 후유증도 오래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업에도 이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양극화된 노동시장은 노조의 극한투쟁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에 견줘 대기업 노동자들이 해고될 상황에 처하면 더 결사적으로 저항하게 된다”며 “임금·복지 혜택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밀려나면 벼랑 끝에 몰린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구조조정의 충격을 보완할 새로운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기 실리주의가 만연한 노사관계 관행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 노사는 호황기에 잔업·특근 수당은 물론 막대한 금액의 성과급을 나누어 갖기에 급급했지, 불황기에 대비해 고용안정기금을 쌓아놓는 등의 노력은 소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완성차업체 노동자들 사이에선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고 보자’는 식의 인식이 강화됐고, 매년 성과급 투쟁이 일상화됐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 자신도 단체협약에 ‘고용보장’이라는 문구를 집어넣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업 울타리를 넘어선 산업적, 국가적 차원의 고용안정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나 독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에선 구조조정 때 노동자들을 일단 ‘일시 해고’한 뒤, 실업급여 외에 노사가 조성한 기금으로 이전 소득의 95%가량을 보장해준다. 독일의 경우, 호황기에 노동자들이 잔업시간을 개개인의 시간계좌에 적립해뒀다가 불황기에 소진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계정제’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이번 기회에 노사간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 등 작업장 혁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 전반의 구조개편을 염두에 둔 활로를 모색하는 대신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은 근원적 문제로 지적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완성차 업체의 활로를 포함한 중장기 전략에 대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시급한데, 정부가 이런 노력은 보이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며 “애초 쌍용차를 살릴 의지가 없었던 데다, 그 책임도 노조에 돌리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양극화된 노동시장은 노조의 극한투쟁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에 견줘 대기업 노동자들이 해고될 상황에 처하면 더 결사적으로 저항하게 된다”며 “임금·복지 혜택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밀려나면 벼랑 끝에 몰린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구조조정의 충격을 보완할 새로운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기 실리주의가 만연한 노사관계 관행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 노사는 호황기에 잔업·특근 수당은 물론 막대한 금액의 성과급을 나누어 갖기에 급급했지, 불황기에 대비해 고용안정기금을 쌓아놓는 등의 노력은 소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완성차업체 노동자들 사이에선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고 보자’는 식의 인식이 강화됐고, 매년 성과급 투쟁이 일상화됐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 자신도 단체협약에 ‘고용보장’이라는 문구를 집어넣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업 울타리를 넘어선 산업적, 국가적 차원의 고용안정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나 독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에선 구조조정 때 노동자들을 일단 ‘일시 해고’한 뒤, 실업급여 외에 노사가 조성한 기금으로 이전 소득의 95%가량을 보장해준다. 독일의 경우, 호황기에 노동자들이 잔업시간을 개개인의 시간계좌에 적립해뒀다가 불황기에 소진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계정제’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이번 기회에 노사간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 등 작업장 혁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 전반의 구조개편을 염두에 둔 활로를 모색하는 대신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은 근원적 문제로 지적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완성차 업체의 활로를 포함한 중장기 전략에 대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시급한데, 정부가 이런 노력은 보이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며 “애초 쌍용차를 살릴 의지가 없었던 데다, 그 책임도 노조에 돌리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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