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뻥뚫린 사회안전망…커지는 ‘해고’ 비명소리

등록 2009-08-27 07:02

실업급여 100만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실업급여 100만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사람 자르고 보자’ 구조조정 구태 반복
실업급여, 길어야 8개월…그 뒤엔 ‘나락’
비정규직·여성노동자 희생 0순위 악순환




① 파산위기의 고용시스템

# 쌍용자동차 노조의 파업은 끝났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해고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함에, 실직자로 밀려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들은 이미 벼랑 끝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77일간의 파업이 남긴 것은 생산 차질 3100억원이라는 외형적인 손실만이 아니었다. <한겨레>는 쌍용차 주변 인물들을 날실과 씨실 삼아, 대량해고 위험에 닥친 우리사회 고용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들여다봤다.

노조의 파업으로 공장을 멈춘 뒤 83일만에 공장을 재가동한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13일 오전 직원들이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노조의 파업으로 공장을 멈춘 뒤 83일만에 공장을 재가동한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13일 오전 직원들이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0일 평택시내 산 중턱에 자리잡은 정자. 쌍용자동차 생산 부문에서 일했던 희망퇴직자 10여명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만 58살 정년을 불과 1~4년 앞둔 지난 5월 제발로 회사를 떠난 이들이다.

1969년 입사해 40년동안 잔뼈가 굵은 직장에서 쫓겨나던 날, 노아무개(57)씨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리무진 차량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노씨가 자르던 세단형 승용차처럼, 회사는 단칼에 2400명을 자르겠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이 나가줘야지’라고 생각해 받아들였지만, “빨리 퇴직하면 몇달치 위로금을 더 얹어주겠다”던 회사는 퇴직 뒤 감감 무소식이었다. “퇴직금을 줄 계획도 없이 무조건 자르고 보자던 것”이라며 노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만 30년 근속을 앞두고 희망퇴직한 김재덕(58)씨도 “방 빼고 짐 다 옮기고나니, 전셋값은 돈 생기면 준다는 꼴”이라고 씁쓸해했다. 퇴직 뒤 두달여가 지난 7일이 돼서야 퇴직금 15%를 겨우 지급했던 회사는, 지난주 퇴직금을 전액 지급했다.

■ 구조조정은 해고 외엔 답이 없나? 이날 만난 희망퇴직자들은 “도장공장 농성자 가운데 80%는 본인이 해고대상자가 된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쌍용차에서 제발로 걸어나왔거나 쫓겨난 ‘죽은 자’든지, 쌍용차에 남은 ‘산 자’든지 회사의 구조조정 방안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파업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관리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합리함도 비슷했다. 영업 부문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지난 4월 희망퇴직한 김정택(49·가명) 부장은 “회사가 정리해고 대상자를 정하는 기준이나 원칙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립팀 소속인 박아무개씨는 해고밖에 답이 없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산 자’지만 파업에 동참했다. 인원 구조조정만 내세우는 회사 쪽 해법이 못마땅해서다. 다른 대안도 없지는 않았다. 노조는 ‘일자리 나누기’방안으로 정리해고 대신 하루 ‘8+8’ 주·야간 2교대 체제를 ‘5+5’ 3조 2교대 체제로 바꾸고 임금을 적게 받겠다는 대안을 제안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회사 쪽이 2646명을 감축해 줄이겠다는 인건비 2300억원을 무급휴직, 교대조 확대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제안도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1998년 현대차 1만166명, 2001년 대우차 6884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을 때도, 회사가 오로지 정리해고를 밀어붙이고 노조는 극한 투쟁으로 맞섰다. 1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사회는 정리해고 외에 노동시간 단축이나 교대제 개편과 같은 노·사 상생의 구조조정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사회안전망 없는 실업은 공포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 옥쇄파업까지 벌이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은 ‘실업’이었다. 이들은 ‘해고는 곧 죽음’이라고 울부짖었다. 대기업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저임금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로의 추락을 뜻한다. 정부가 주는 실업급여도 이들에겐 ‘안전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희망퇴직자인 이아무개(56)씨는 “회사와 정부가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얼마 전 실업급여 지급요건인 구직활동 증명을 위해 송탄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을 찾았다가 처량함을 느꼈다고 했다. 싸인을 부탁했더니 1시간 동안 문 앞에 세워놨다는 것이다. 이씨는 “구걸하는 느낌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나마 한달에 100만원 넘게 나오는 실업급여는 쌍용차 실직자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실업급여가 끊기는 내년 초에는 대책이 없다. 전직·창업 지원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고아무개(55)씨는 이날 평택종합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앞으로 8달동안은 교육에 참석하고 구직활동 요건만 충족하면 다달이 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고씨는 불안하다. 센터에서 “55살 이상은 재취업이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올초부터 지난 24일까지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이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연간 100만명을 넘어섰다. 실업자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은 튼튼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는 보통 퇴직 전 임금의 30~50% 남짓으로 3~8개월 받으면 그만이다. 월급의 80~90%까지 보장받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안전망에 비할 게 안된다.

■ 비정규직은 쉽게 쓰고 잘라도 된다? 일찌감치 나락으로 먼저 떨어진 것은 비정규직이었다. 2002년 쌍용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ㅎ(41)씨는 용접, 기계작동하는 일을 하면서 월 150만원을 손에 쥐었다. 복지·상여금을 포함해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된다. 같은 팀에서도 좀더 편한 공정은 정규직, 험하고 궂은 공정은 비정규직 차지였다. 해고의 칼바람에도 더 쉽게 노출됐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가 인수할 때 1700명까지 늘었던 비정규직은 2006년 500명, 2008년 300명 등 차례로 잘려나가 지금은 300명 남짓만 남았다. 무쏘, 렉스턴 등이 잘 팔리자 인건비가 적게 드는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던 회사는 경기가 나빠지자 가장 먼저 비정규직부터 줄였다. 생산량이 줄어들면 비정규직 자리에 정규직을 전환배치했고, 자연히 비정규직은 밀려났다. 사내하청업체 12곳 가운데 2개 업체는 아예 문을 닫았다. 회사 관리직 간부인 최민호(가명)씨는 “코란도에서 렉스턴 라인으로 전환배치하라는 데 정규직 노조가 동의하지 않았고, 회사와 노조 서로의 필요에 의해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ㅎ씨는 지난해 말 강제휴직된 뒤 퇴직서를 쓰지 않고 버티다가 지난 4월 결국 정리해고됐다. 그를 비롯한 비정규직 20여명도 파업에 끝까지 동참했지만,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48(무급 순환휴직):52(희망퇴직)’라는 숫자 안에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별도 확약서로 회사 내 다른 업체로의 ‘취업 알선’을 약속받았을 뿐이다. ㅎ씨는“한달 실업급여 80만원으로 가족들 먹여살릴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지 못했다. 올초 바뀐 한상균 쌍용차지부장 집행부 이전의 노조는 비정규지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노조 설립을 말렸다. 이번 파업 과정에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 고용안정기금 12억원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사회적인 반향은 없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비정규직부터 자르면 정규직의 고용은 보장된다’는 함정에 빠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남용을 눈감아주고, 한편으론 비정규직 일자리를 뺏게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 사라진 일자리 90%는 여성 일자리! 지난 11일 장대 같이 퍼붓는 빗줄기를 피해 평택의 한 음식점에 쌍용차 사내하청업체에서 해고된 50대 여성 세 사람이 모여 앉았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들은 아이들 학비를 보태려 7~10년째 차체 누수를 방지하는 실리콘 작업을 하는 쌍용차 생산라인을 타왔다. 월급은 120만원 남짓. 정진희(51·가명)씨는 “하루에 자동차 240~250대를 처리할만큼 죽어라 일했지만 정규직이 받는 학자금은 그림의 떡이고, 생리휴가도 눈치 보여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지난 4월 해고된 뒤로는 그런 일자리마저 그립다. 정씨는 요즘 생활정보지를 훑어보는 게 일과다. 하지만 평택에서 50대 여성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쌍용차에 다니는 남편을 둔 지영미(36·가명)씨는 평택 민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3년째 근무 중이다. 7살, 9살난 아이들과 좀더 오랜 시간을 보내려고 퇴근시간이 늦은 백화점 대신 선택한 일이지만, 일은 고되다. 아침8시20분 출근해서 0~4살 어린아이 열댓명과 하루종일 씨름하고 오후6시20분에 퇴근한다. 한달에 받는 돈은 겨우 100만원안팎이다. 시민단체에선 지씨처럼 돌봄 노동을 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육교사는 평택에선 ‘삼디(3D)’ 업종이다. 정작 지씨의 아이들은 엄마의 보살핌 없이 집에서 ‘혼자’ 논다. ‘산 자’였던 남편이 파업에 참가했다가 최근 구속되면서 지씨는 “남편이 몰래 대출받아놓은” 700만원으로 버티고 있다. 계속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보고 있자면 속이 탄다.

지난달 일자리 감소폭 7만6000명 가운데 96%가 여성 일자리로 집계될만큼, 경제위기 이후 여성들이 고용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 평택 지역경제가 흔들린다

‘쌍용차 노사 대타협, 평택경제 청신호’. 지금도 평택시내 곳곳에는 쌍용차 정상화를 바라는 지역 상인연합회나 시민사회단체가 붙인 이런 펼침막들이 펄럭이고 있다.

평택시에서 쌍용차가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은 15%가량 된다. 그만큼 쌍용차가 위기에 빠지면, 평택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 지역경제도 위축된다. 평택시는 생활비, 학원비 등 쌍용차 노동자들이 한 해 840억원을 평택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장 쌍용차와 직결된 협력업체들의 타격이 심각하다. 쌍용차 협력업체인 효림정공 김종진 공장장은 “지난해 140명이나 되던 직원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진짜 안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없이 일자리를 떠난 2·3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본사가 있는 칠괴동이나 인근 세교동·동삭동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음식점, 학원 등은 절반 가까이 문을 닫았다. 오영귀 평택시 민생안정대책단 총괄조정반장은 “쌍용차 생산이 재개되긴 했지만 주변 상권이 언제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직자들이 대거 쏟아져나오면서, 영세상권이 들썩이기도 한다. 희망퇴직자인 김재덕(58)씨는 “실직자가 워낙 많아 평택 통닭집 권리금과 개인택시 번호판 양도·양수금도 올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지역주민들은 평택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숨통이 트일까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무료로 전직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이 받은 스트레스를 상담받도록 하는 ‘위기상황 스트레스 관리(EAP)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평택 한 지역만 지정한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쌍용차 임직원 7000여명 가운데, 평택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4500명뿐이기 때문이다. 평택/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