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및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에 대한 한국노총의 투쟁 일지
“복수노조는 노동기본권” “민주노총과 철벽공조” 외치더니…
조직 위상 떨어질라 명분 버리고 실리 선택 내부서도 비판 확산
조직 위상 떨어질라 명분 버리고 실리 선택 내부서도 비판 확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복수노조 허용 반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경영자총협회(경총) 등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방안에 대한 협상에 들어간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급작스런 방향 선회는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눈앞의 협소한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이 움직이는 풍토를 답습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것은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허용 반대를 공개적으로 밝힌 대목이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기업 내부에서 노조 사이에 사활을 건 조직경쟁이 불가피하고 더 투쟁적인 노조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복수노조 금지를 요구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권고한 ‘결사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해온 그동안의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노조로선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복수노조를 받아들이는 게 현장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과 ‘철벽 공조’를 과시하다가 사전 고지도 없이 한나라당·경총·노동부와 30일 4자회동을 한 것도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는 유불리를 따지는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평등, 자유 등과 같은 기본적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문제”라며 “한국노총이 진정한 노동자를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빨리 투쟁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의 이런 방향 선회는 산하 노조의 처지나 노동계에서 한국노총이 차지하는 위상 등과 연관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달부터 한국노총 소속 항운노련 등 일부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복수노조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감지됐고, 조직 전체적으론 전임자 임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했다. 한국노총의 조직력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국노총 본부는 산별노조의 입장을 잠재우며 원칙론을 고수했지만, 한나라당이 30일 △복수노조 금지 3년 유예 △노동자 1천명 이하 사업장의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은 노사자율로 결정 등의 중재안을 내놓자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세종시나 4대강 등 다른 현안에 묻혀 한국노총의 주장이 사장될 가능성이 컸다”며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한국노총 내부에서조차 장석춘 위원장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장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한 30일 오전까지도 한국노총 집행부 대다수는 이런 방침 변화를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장 위원장이 가져온 안을 보고 놀라고 곤혹스러웠다”며 “협상을 끝까지 해보다가 카드로 내놓는다면 모를까 선제적으로 이렇게 밝히고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은 “1997년 산별 복수노조를 허용한 뒤에 노동계 내부의 갈등이 없었듯이 기업별 복수노조를 내년에 허용해도 한국노총이 우려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불과 며칠 만에 태도를 바꾼 한국노총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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