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단체협약 해지 사업장
‘기획성 단협해지’ 속내는
공기관 선진화 기류 편승
협상 모양새 취한뒤 결렬
신뢰 깨져 선택은 파업뿐
공기관 선진화 기류 편승
협상 모양새 취한뒤 결렬
신뢰 깨져 선택은 파업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코레일의 노조 대응 문건은 공공기관이 ‘단체협약(단협) 해지’를 노조 와해 전략의 유용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코레일 인사노무실은 이 자료에서 “애초 단협 해지와 같은 최후적 수단을 고려하지 않던 공공기관에서도 연말을 앞두고 단협 해지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침에 따라 코레일도 단협 해지를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노사관계에서 ‘극약처방’인 단협 해지는 정부가 조장한 측면이 크다.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관련 지도지침’을 각 공공기관에 내려보냈다. 이 지침에서 노동부는 “단협 유효기간과 관련해 단협 만료 6개월 전까지 상대방에게 사전 통고하면 종전의 단협을 해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단협 해지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지침이 내려진 이후 노동연구원, 직업능력개발원,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 10여 곳이 무더기로 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문제는 단협 해지가 ‘최선을 다한 협상’과 ‘어쩔 수 없는 결렬’에서 나오지 않고, 대부분 사쪽의 일방적인 조처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협 개정을 위한 교섭이 해지를 위한 요식행위처럼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은 “노동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선 갑자기 단협이 해지되고 그 뒤 실질적인 교섭이 이뤄질 정도로 ‘기획성 단협 해지’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도 단협 교섭 중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했다. 단협 해지를 하면 그동안 쌓아온 노사간 신뢰는 산산이 깨진다. 노조 활동과 관련한 조항이 해지 통보 6개월 뒤부터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노사는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는 협상에 임하지만, 이때부터 주도권은 사쪽에게 넘어간다. 여섯 달 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무단협 상태가 되면, 노조 전임자의 현업복귀 명령과 노조 사무실 폐쇄, 조합비 원천징수 중단 등의 조처가 뒤따른다. 사쪽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는 내년에도 지속돼 노사관계에 파열음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기관 기관장 평가 기준에 단협 평가 항목이 포함돼 있고, 낮은 평가를 받은 기관장은 자리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광오 국장은 “공공기관장으로선 현행 단협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해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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