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파업때 56%가 우울증…올해는 80%로 늘어
파업보다 구조조정 큰 고통
자살률 일반인의 3.7배
“방사능 피폭된 것과 같다”
파업때 56%가 우울증…올해는 80%로 늘어
파업보다 구조조정 큰 고통
자살률 일반인의 3.7배
“방사능 피폭된 것과 같다”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청 앞뜰. 또래와 함께 뛰어놀던 6살배기 아이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자원봉사자가 “위험해. 어서 내려와”라고 외치자 아이가 말했다. “싫어. 자살할거야.”
같은 시각 평택시청 안에는 이 아이의 부모를 포함한 13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모였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마련한 ‘집단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리해고·파업을 겪은 뒤 지난 2년 동안 늘 죽음을 생각했다. 공장 굴뚝에서 자살하는 꿈도 꾸고 실제로 넥타이로 목을 매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평택공장 점거농성’이 끝난 지 600일이 지났다. 세월이 가면 상처도 아물기 마련이건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등이 공동으로 조사한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가 3일 나왔다. 그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193명 중 우울증 항목에 답한 190명의 80%인 152명이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최근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파업중이었던 2009년 6월 1차 조사와, 파업이 끝난 직후인 8월의 2차 조사 결과보다 심각한 수치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1차 조사에서 284명 중 156명(56%)이었던 것이 3차 조사에서 80%로 급증했다. 전쟁, 고문, 자연재해 등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은 2차 조사에서 42.8%였던 것이 3차에서 52.3%로 높아졌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파업 당시나 직후에 정신적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구조조정 노동자와 가족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큰 고통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고통의 근원을 놓고는 응답자의 87%인 168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구조조정 뒤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82만2800원으로 해고 전보다 74%가 줄었다.
86.2%가 현재 빚을 지고 있는데 구조조정 이후에만 가구당 평균 3060만원의 빚이 추가됐다. 회사 쪽의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소송중인 노동자만 200명이 넘는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재앙적 상황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에 시달리며 현재 엄청난 죽음의 그늘 속에 살고 있다. 이는 방사능에 피폭된 것과 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재앙적 상황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에 시달리며 현재 엄청난 죽음의 그늘 속에 살고 있다. 이는 방사능에 피폭된 것과 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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