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현대차 계기로 본 ‘정규직 이기주의’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최근 ‘장기 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을 요구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다시 불거졌을 뿐, 이미 현장에선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자동차와 조선 등 대기업 노조가 버티고 있는 사업장에는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현대차에는 8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늘 고용 불안을 겪으면서 정규직 임금의 60%가량만 받고 일을 하고 있다. 조선소에는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보다 많은 곳이 여럿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정규직이 1만2600명인데 하청 노동자는 1만4812명이다.
경기가 나빠져 생산량이 줄어들면 우선적으로 해고를 당하는 쪽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관계자는 “2008년 경제위기 뒤 2~3년 동안 현대차와 지엠(GM)대우차에서는 각각 1000여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쫓겨났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의 묵인 아래, 경기가 좋을 때는 일자리를 하청으로 채우고 상황이 나빠지면 하청 노동자를 먼저 내보내는 등 비정규직은 고용의 ‘완충지대’ 구실을 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고용 불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정규직들 사이에 ‘노조가 힘이 있고 고용이 안정적일 때 최대한 챙기자’는 실리주의가 확산되면서 더욱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리해고가 도입된 뒤 우리 사회에서도 ‘평생직장’이라는 신화가 깨졌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2001년 대우차, 최근에는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에서 정규직들이 줄줄이 직장을 잃었다. 지엠대우차 노조 관계자는 “최근 일본 지진 탓에 부품 조달이 어려워 2주 동안 공장이 정상 운영되지 못했을 때 조합원들이 엄청 불안해했다”며 “2001년 정리해고의 상처가 조합원들에게 거의 ‘낙인’처럼 찍혀 있어, 비정규직까지 신경쓰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정규직들은 ‘여기서 밀려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에서 희망퇴직한 박아무개씨는 “한번 정규직에서 밀려나면 다시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다”며 “현재 하청업체를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사회적 배제 시각으로 본 비정규직 고용’ 보고서를 보면, ‘노동패널’ 1998~2005년 자료를 통해 8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 이동 현황을 조사한 결과 62.7%가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전환은 12.8%에 머물렀고 20.3%는 실업 상태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다리’가 아니라 ‘수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패널은 1998년부터 해마다 같은 표본(5000가구)을 대상으로 경제활동 여부를 추적하는 종단 가구조사다.
20년 이상 유지돼온 기업별 노조 체계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 이기주의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별 노조가 확대되고는 있지만, 대기업 노사는 여전히 기업별 교섭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기업별 체계에서는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 해당 사업장의 근로조건 문제가 주요 논의 대상이다. 현행 노동조합법도 기업별 노조에 맞춰져 있다 보니,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정책과 관련된 투쟁을 하면 불법이다.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 40~50대 정규직들이 ‘불법’을 감수하며 투쟁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하지만 힘이 있는 대기업 노조가 실리주의에만 매몰되면서 결국 노동계 전체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은 1989년 19.8%에서 2009년 10.1%까지 떨어졌다. 비정규직은 800만명을 넘어섰는데 조직률은 2%에 머물고 있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의 몫으로 볼 수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61.3%에서 지난해 59.2%까지 떨어졌다. 노동계 전체의 힘이 약화되면서 개별 사업장 중심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등 정리해고 앞에서는 정작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속노조는 ‘1사 1노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실제 기아차는 2008년 정규직 노조에 비정규직이 가입해 하나가 됐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현대차와 지엠대우차에서 비정규직이 무더기로 해고됐지만 기아차는 이를 피해갔다. 김승언 기아차노조 정책실장은 “하청 노동자들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정규직이 그들의 고용을 책임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예고됐으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연대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아차 하청 노동자는 3500여명인데, 이 가운데 2500명이 조합원이다. 이경훈 현대차노조 위원장도 ‘1사 1노조’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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