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멍에 벗어 한없이 기쁘지만…” 이원갑씨
“폭동 멍에 벗어 한없이 기쁘지만…”
“탄광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인 사북 노동항쟁이 폭동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데 대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25년 전인 1980년 사북 노동항쟁을 이끌었던 이원갑(66·?5n사진)씨는 동료 신경(64)씨와 함께 지난 15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받았다. 두 사람은 2000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사북항쟁과 관련해 명예회복을 신청했다.
사북 노동항쟁은 1980년 4월21일부터 24일까지 회사 쪽의 착취와 어용 노조에 반발해 정선군 사북읍 일대에서 일어난 탄광 노동자들의 총파업 사건이다. 당시 신군부의 계엄사령부는 주모자 등 81명을 계엄포고령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으며 이씨 등 7명은 실형을 선고받고 21명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씨는 신씨와 함께 당시 항쟁지도부 협상대표와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대정부 투쟁을 이끌다 구속돼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씨는 “파업이 끝나자 정선경찰서에 세워진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보안사의 고문기술자들에게 고춧가루 고문,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같은 살인적인 고문과 폭력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해고당하고 징역살고 나오니까, 블랙리스트에 올라 막노동판에서도 잘 안 써줬다”며 “경제적인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때 동원탄좌 노동자는 3500여명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주민들도 합세해 시위를 벌인 인원은 총 6천여 명에 이르렀다”며 “사북 항쟁은 독재권력에 항거하고, 부도덕한 기업, 철저하게 어용인 노조와 맞서 싸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당시 신군부의 억압 속에서도 생존권 사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광부들이 더 이상 역사의 죄인으로 남지 않도록 정부의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회와 각 정당 당사에 가서 농성도 하고 사람 만나기를 청했지만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광부들의 손을 그 누구하나 잡으려 하지 않았다”며 어려웠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때 고문을 받았던 사람들이 18명쯤 되는데, 이들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받았으며 한다”며 “온갖 고문과 폭행으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도 적절한 치료와 보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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