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한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의 이범균 판사의 법적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심지어 법원 안에서도 이번 판결을 두고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하는 판결”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왔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한테 11만개의 정치 관련 트위트·리트위트를 올리도록 지시한 사실이 국정원법에는 위반되지만 대선 개입의 목적이 없어 공직선거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이상한 논리 탓이다. 국가권력의 조직적 선거 개입을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이번 판결은 시민의 가슴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심었다.
노동계가 이번 판결 자체의 부당함을 넘어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같은 재판부가 지난달 14일 원 전 원장과 같은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사건 때문이다. 피고는 유기수 민주노총 사무총장이다. 두 사건의 형량이 같으니, 이범균 판사가 유 사무총장 사건의 판결에서 인정한 범죄 사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판결문을 보면, 유 사무총장은 5월24일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석해 애초 신고되지 않은 방향으로 도로를 행진하던 도중 이를 말리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의경의 방패를 밀쳐 “(의경의) 좌측 팔 안쪽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피부가 붉게 물들었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뚜렷한 멍 자국이 팔 전체에 걸쳐 남아 있”게 한 죄(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를 지었다. 유 사무총장은 5월24일과 지난해 12월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철도민영화 반대 집회에 참가해 5000여명, 1000여명의 집회 참가자와 함께 25분, 40분 동안 차들이 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한 죄(일반교통방해)도 있다.
이 판결문에서 이범균 판사는 민주주의 수호를 향한 굳건한 믿음과 의지를 내비쳤다. “표방하는 사상과 주장이 정당한 것이라도 정해진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이용된다면 이는 도리어 반민주적이므로,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라도 엄정하고 단호하게 심판하여야 한다.”
이범균 판사는 노조 간부한테 들이댄 그 ‘엄정함’과 ‘단호함’을 주요 국가기관 책임자의 조직적 선거 개입 판단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시민과 노동계가 분노하며 그 이유를 되묻는 이유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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