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해고뒤 100여명 기형적 채용
최근 개인정보 보호 규정 강화되자
또다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전환
“근로계약서도 쓰지않은 불법채용”
최근 개인정보 보호 규정 강화되자
또다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전환
“근로계약서도 쓰지않은 불법채용”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은 외환위기 당시 대량 구조조정에 이어 2005년 ‘미래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또다시 각 지점 정규직 상당수를 정리해고했다. 해마다 흑자를 내던 회사여서 이해할 수 없는 조처라는 평들이 많았다. 당시 정리해고된 일부 직원들은 근로계약서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다시 채용됐다. ‘알바 9년’,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9년 전 정리해고된 이들은 주로 총무직들이었다. 총무직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는 보직을 없앤 뒤 희망퇴직을 받고 그래도 안 되면 정리해고를 했다. 희망퇴직자 가운데 100여명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일하던 지점에 돌아왔다. 4대 보험도, 근로계약서도 없는 ‘아르바이트 사무지원직’ 신분이었다. 중간에 그만두는 이들도 나왔지만, 절반 정도는 올해 상반기까지 9년 동안이나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묵묵히 일했다.
금융기관에서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을 계기로 올해 들어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정과 지침이 강화됐다. 생명보험 가입 고객의 개인정보 취급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신분이 불안정한 아르바이트 사무지원직들에게 관련 업무를 맡기기가 어려워진 흥국생명은 지난 5월, 9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일해온 이들을 포함한 181명을 ‘1년짜리 계약직’으로 전환(회사 쪽은 ‘신규 채용’이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이들을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근속기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다.
계약직 전환이 안 된 9명은 퇴직금도 없이 바로 해고됐다. 이들 가운데 1999년 구조조정된 유아무개(48)씨와 2004년 12월 희망퇴직했던 김아무개(43)씨도 포함됐다. 이들은 최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라며 진정서를 냈다.
유씨는 7일 “지난해부터 계약직 전환 얘기가 있었다. 입사지원서를 내라는 얘기가 없어 알아보니 나만 전환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뚜렷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회사를 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각 지점의 아르바이트 사무지원직들은 그동안 지점장 개인이 고용하는 기형적 형태로 운용돼 왔다. 지점장 월급에 ‘사무지원 수수료’란 명목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150만원, 기타 지역은 120만원을 지급한 뒤 다시 지점장이 아르바이트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점장이 다른 지점으로 인사 발령이 나도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근무했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본부 직원한테서 업무 지시를 받기도 했다. 월급은 물론 업무 지시까지 회사로부터 받는, 사실상의 고용관계였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는 “이들의 근무 형태는 파견직이라면 기간이 2년이 지났으니 파견법 위반이고, 계약직이라면 무기계약직에 해당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불법 채용과 부당 해고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흥국생명 쪽은 “아르바이트 사무지원직은 개인사업자인 지점장이 개인적으로 고용해 지점장들끼리 고용을 승계한 것이다. 개인정보 취급 등의 문제가 있어 이번에 계약직으로 신규 채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태광그룹의 또다른 계열사인 종합케이블방송사업자 티브로드도 최근 협력업체의 간접고용 설치기사 정리해고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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