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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2세 선천성 질환 증가추세…정부차원 상세한 조사 필요

등록 2014-11-12 22:27수정 2016-03-22 13:48

[심층 리포트] ‘반도체 아이들’의 눈물(상)
반도체 화학물질은 기업이 감추는 ‘영업비밀’이다. 가령 알려진 화학물질 두 개가 섞이고 가열되었을 때 어떤 새로운 유해성 부산물이 발생하는지 규명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악의 씨’를 추적하기 어렵다. 국외 연구에서 단서를 찾아볼 만하다.

대만에서 지난 2008년 반도체 회사 8곳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1980~1994년 재직한 6834명)의 자녀 5702명(1980~1994년 출생)의 건강 상태를 한 연구팀(대표 린징쥔 대만국립대 교수)이 추적한 결과, 화학물질 노출 집단의 자녀들이 비노출 집단의 자녀보다 선천성 기형으로 3.3배, 심장 이상으로 4.2배까지 숨질 위험성이 높다는 사실(‘반도체 남성 노동자 자녀들의 선천성 기형에 따른 사망 위험 증가’, <직업 환경 건강 국제저널> 수록)이 밝혀졌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정부 보건자료를 분석한 연구팀은 적어도 아내의 임신일 전으로부터 두달 내(정자 형성 기간)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던 이들을 노출 집단으로, 적어도 같은 시기 반도체 회사에서 일한 적 없는 이들을 비노출 집단으로 묶었다. 아내의 영향 요인까지 배제한 채 남성의 정자 형성 기간에 노출 가능한 화학물질이 어떻게 2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시적으로 살피겠다는 취지였다.

논문은 “1994년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며 화학물질, 다른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남성 노동자의 아이에게서 선천성 기형과 부분적 심장 이상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명시했다.

대만에서는 이미 상관관계 연구
노출집단 자녀 기형사망 높다 밝혀져
국내에는 연구사례 한건도 없어
건강보험공단 자료 들여다보니
2대 반도체사 노동자 자녀들
선천기형 치료사례 1.4배 많아

국내 연구 사례는 없다. 다만 특정 질환을 안고 태어나는 ‘반도체 2세’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선천기형이 두드러진다. <한겨레>가 은수미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입수한 ‘건강보험공단 진료실 인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2대 반도체 기업에 재직 중인 노동자의 아이들(건강보험 피부양자 기준, 이하 ‘반도체 그룹’) 가운데 태어난 해 선천기형을 진단·치료받은 이들이 2009년 256명에서 2013년 752명(그래프 참조)으로 늘었다. 출생 인원에 대비한 유병률(사실상의 발생률)은 1000명당 48명에서 116명으로 2.4배 뛰었다.

0~9살로 확대한 반도체 그룹에서 선천기형으로 치료받은 인원은 건강보험 가입자의 전체 피부양자 아이들(전국민 그룹)보다 최대 1.4배 많았다. 2012년 반도체 그룹 아이들이 10만명당 3733.5명꼴(유병률)로 선천기형을 치료받은 때, 전국민 그룹 아이들은 10만명당 2712.8명이 치료받은 결과다. 10살 미만의 반도체 2세들이 1000명당 10.2명꼴로 선천기형에 대한 진단·치료를 더 받은 셈이다. 0~19살의 경우, 1.8배 이상으로까지 벌어진다.

기형의 일부인 구순기형 유병률(5년 평균)은 반도체 그룹 아이들(0~9살)이 10만명당 64.9명일 때, 전국민 그룹은 56.3명이었다.

이런 데이터만으로 국내 반도체 그룹 아이들이 생식독성 영향권에 더 노출되었다고 확정되진 않는다. 부모의 연령, 출산력(임신 횟수, 유산 경험 여부 등), 세부 업무 등이 면밀히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비반도체 공정 부모의 자녀도 포함하는 등 한계도 있다. 완벽한 통계 분석은 정부가 나서도 기업이 거들지 않는다면 실상 불가능한 작업인 셈이다.

기획의 감수를 맡은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백도명 서울대 교수(산업보건전문의)는 “모든 통계에는 기본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라며 “중요한 건 경향성이어서 <한겨레> 분석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데이터에는 국내 450개 이상의 반도체 회사 가운데 ‘빅2사’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만 포함됐다. 엄마 노동자가 반도체 회사에 다니더라도 다른 업태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건강보험 가입자일 경우의 아이들도 제외됐다. 맞벌이 가족의 경우 자녀들은 주로 아버지 회사의 피부양자로 등록되기에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아이들이 상당수 제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천성 거대결장을 갖고 태어난 김희은(42)씨의 아들, 구순기형을 지녔던 장형웅(38)씨의 아들, 반도체 대기업의 협력사에서 일했던 박영민(34)씨의 아들(0살, 선천성 면역 결핍 질환)은 ‘반도체 노동자 2세’임에도 불구하고 ‘전국민 그룹’의 유병률에 각기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가 극복된다면 반도체 그룹과 전국민 그룹의 유병률 격차는 더 선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전문의)은 “신뢰구간이 확보된 과학·의학계 연구에서 비교 집단 간 50% 격차는 상당한 것”이라며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백혈병 같은 건강 문제가 사회를 놀라게 했는데 그게 노동자 당사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상세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자료분석 서규석 quixote7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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