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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민주노총 첫 직선제 시작…왜 주목 못 받을까?

등록 2014-12-05 20:24수정 2014-12-07 11:35

[토요판] 뉴스분석, 왜?
“비정규직 수리기사 싸움보다도 관심 못 끄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제8기 위원장과 임원을 뽑는 선거가 67만명의 조합원 직선제로 3일부터 9일까지 진행 중이다. 기호 1번에는 정용건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2번에는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3번에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4번에는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이 출마했다. 4일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겨레신문 지부의 조합원이 투표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제8기 위원장과 임원을 뽑는 선거가 67만명의 조합원 직선제로 3일부터 9일까지 진행 중이다. 기호 1번에는 정용건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2번에는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3번에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4번에는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이 출마했다. 4일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겨레신문 지부의 조합원이 투표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저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조합원입니다. 투표도 첫날 일찌감치 했습니다. 그날 부장이 물었습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전 부장도 물었습니다. “누구 뽑아야 되냐?” 투표하라는 제 말에 선배도 물었습니다. “근데 누구 뽑아?” 후배도 묻습니다. “누구 뽑아야 해요?” 투표소를 지키는 지부 간사님도 말합니다. “다들 비슷해 보여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대요.” 투표 사흘째인 5일 한겨레신문지부의 투표율은 19%입니다.

바람은 있다가도 없었다. 내년이면 스무살이 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8기 위원장을 뽑는 첫 직선제 선거가 3일 시작됐다.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조인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 연세대분회 김경순(67) 분회장은 “후보자들 포스터 보여주면서 공약 설명도 하고 투표율 50%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 덕분인지 선거 첫날 투표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도 자신들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한 공약을 중심으로 살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부터 국회 앞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공공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들도 전화자동응답(ARS) 방식으로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학교 급식조리원은 “앞으로 우리 같은 비정규직 싸움을 같이 할 사람들이라 관심을 많이 가졌다”며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4명의 위원장 후보가 앞다투어 강조한 비정규직 문제 당사자들의 관심은 ‘조합원들이 노동운동, 민주노총에 관심을 갖게 하겠다’는 직선제의 취지를 어느 정도는 실현했다. 직선제는 봄바람은 일으킨 셈이다.

제주도지사만큼 큰 선거

하지만 봄바람은 태풍이 되진 못했다. 4명의 후보자들은 대부분 ‘파격’보다는 ‘안정’에 가까운 후보들이었다. 인물 자체로 주목을 못 끌었는데, 후보들의 공약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 그리고 대정부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에서 맴돌았다. 인천 지역의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은 “다들 열심히 하겠다, 잘하겠다고 하는데 공보물을 보며 열심히 연구를 해봐도 후보자들 간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은 무관심에 비하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전북의 한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온데다 공약을 봐도 다 똑같고, 연결고리가 없다 보니 남의 나라 얘기 같다. 회사로 후보자들이 유세도 왔는데 다들 ‘뭐지?’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9일까지 진행되는 민주노총 직선제는 규모만 놓고 보면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공직선거 다음으로 크다. 67만1270명에 이르는 투표권자 수는 제주도 주민 규모(60여만명)에 맞먹는다. 룩셈부르크(52여만명)나 브루나이(42여만명) 인구수보다도 많다. 2만개가 넘는 투표소도 가장 최근에 열린 6월4일 지방선거 투표소 1만3665개보다 많다. 그러나 ‘한국 노조운동 역사상 첫 총연맹 지도부 선출 직접선거’라는 역사적 의미와 엄청난 규모에 비해 사회적 관심은 높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확정하기까지 10년 넘은 내부의 고군분투에 비하면 외부의 반응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직선제는 민주노총의 해묵은 숙제였다.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부터 조합원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인 최고 의결기구 ‘대의원대회’에서 투표로 위원장을 선출했다. 이런 간선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건 1998년 3월 이갑용 민주노총 2기 위원장이었다. 그의 선거 공약이 직선제였다.

사실 직선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다. 독재정권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노조 운동의 핵심 구호가 직선제였다. 개별 노조를 넘어 총연맹 단위에서도 직선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다. 이갑용 2기 위원장은 위원장 시절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선거도 그렇지만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한국노총도 단위노조가 직선제를 채택하면서 민주화되고 있지 않나. 우리가 직선제를 하면 한국노총 사업장도 민주노총으로 넘어오거나 한국노총도 직선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직선제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특정 정파가 장악하기 쉬운 대의원대회가 일반 조합원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도 곁들여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대의원은 숫자가 적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정파의 입김이 작용했고, 그러다 보니 전체 조합원 의사와 대의원대회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정파의 폐단을 없애보자는 내부 요인도 직선제 주장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직선제 공약은 ‘신선하다’는 반응은 있었지만 민주노총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에 등장하기까지는 8년이 걸렸다.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직선제를 논의하기로 한 2006년의 임시대의원대회는 개최 성원 부족으로 두차례나 열리지 못했다. 삼세번 만에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으나 이번엔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직선제 논의는 시작도 못하고 무산됐다. 분위기를 다시 띄운 건 2007년 위원장 선거였다. 직선제는 후보들 모두의 공약으로 부활했다. 마침내 같은 해 4월1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다음 위원장 선거인 2010년부터 직선제를 시행하는 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4년의 기다림이 또 필요했다. 6기 위원장 선거를 1년 앞둔 2009년 대의원대회는 직선제 실시를 3년 미루기로 했다. 7기 위원장 선거를 앞에 둔 2012년에도 ‘준비 부족’을 이유로 대의원대회는 3년 유예를 결정했지만, 이 대의원대회가 절차상의 문제로 무효 처리되면서 위원장 직선제는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직선제 유예안을 다시 꺼내들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영훈 위원장이 2012년 11월 사퇴한 뒤 열린 2013년 1월 대의원대회는 애초 계획보다 1년 미룬 ‘2014년 12월31일 이전 직선제 실시’를 결정했다.

직접선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 자체로 당위와 명분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민주노조’의 기치를 들고 등장한 민주노총 안에서도 오랫동안 찬반이 맞섰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었다. 이번 직선제 선거의 투표권자는 모두 67만명을 넘는다. 투표소 관리 인원만도 2만5000명이 넘었다. 민주노총 사무총국 직원은 47명뿐이다.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빈번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직선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민주노총의 역량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저조한 투표율로 무산되거나 부정선거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남는다. 성공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패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었다.

1998년 첫 공약, 2007년 결정
준비 부족, 절차 문제로 연기 끝에
노동정치에도 ‘직접민주주의’ 도입
웬만한 나라, 지자체 선거 못잖아
67만 노동자가 직접 위원장 뽑는다

직선제를 돌파구 삼았다
봄바람 일지만 태풍급은 아니다
현장 노동자 싸움보다 주목 적어
높은 투표율로 새 위원장 나올까
위기의 민주노총, 미래가 달렸다

투표율 50%를 달성할 것인가

실제 김영훈 위원장은 2010년 당선된 뒤 예비조합원 명부를 모으며 전화 자동응답방식 투표 등을 검토했는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이 방식을 포기했다. 직선제 시한은 다가오고 준비는 미흡한 상황에서 유예안을 통과시킨 대의원대회가 절차적 문제로 무효가 되자, 김 위원장은 다시 한번 직선제 유예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위원장 사퇴’에 이어 대의원대회 정족수 부족으로 8개월간 위원장 선출이 연기되는 ‘직선제 유예 후폭풍’을 겪고 나서야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직선제 논의로 인한 후유증이 컸기 때문에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2013년 임기 1년 위원장 선거 때는 직선제 찬반이 아니라 ‘누가 직선제를 잘 완수할 수 있느냐’가 초점이 됐다”고 말했다. 첫 제안이 나온 지 16년 만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3일 직선제가 실시됐지만, 민주노총 안팎의 상황은 16년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유권자가 67만명 이상이고 투표소도 지방선거 투표소보다 많아 선거 관리와 성사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사회적 관심의 척도인 언론의 관심은 척박하다. 위원장 후보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8일부터 12월4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검색 누리집 ‘카인즈’에서 ‘민주노총 직선제’로 기사를 찾아보니 10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경비원’이나 ‘정윤회’ 관련 기사는 각각 721건, 1123건에 달했다. 좀처럼 뜨지 않는 선거 분위기는 ‘투표율 50%’에 대한 위기감을 낳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이번 선거 투표율이 50%가 넘지 않으면 개표도 못 해보고 재선거가 실시된다. 투표율 미달은 조합원의 무관심의 심각성과 그 무관심을 극복해낼 민주노총의 역량 부족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요즘 민주노총 출입기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투표율 50% 성사 여부다.

낯익은 후보, 비슷한 공약은 직선제로도 민주노총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67만 조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되겠다고 나선 민주노총의 위원장 후보들과 그들의 공약은 오늘날 민주노총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지만 후보자들의 공약은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미치지 못했다. 후보자들의 정파적 배경도 기존의 정파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직선제에 투입된 인원과 예산에 비해 선거운동의 방식은 새롭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부터 때론 현안 대응을 줄여가면서까지 사무총국 인원의 절반 가까이 직선제 준비에 투입했다. 예산도 민주노총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6억여원을 배정했다. 선거 관리는 탁월했을지 몰라도 선거운동 방식은 토론회, 현장유세 등 과거에 머물렀다. 팟캐스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고 웹툰, 영화, 드라마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직선제에 대한 무관심을 ‘서글픈 민주노조 운동의 자화상’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정파 구도에 갇히지 않고 청년 후보나 여성노동자가 위원장 후보로 나왔으면 더욱 주목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직선제는 그 자체로 조합원 직접민주주의 진작이란 의미가 있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을 바꿔내는 케이블방송·인터넷 설치 수리기사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만도 못한 상황이 됐다.”

“우려는 많지만 한번은 넘어야 할 산”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직선제 선거가 민주노총 조합원을 넘어 국민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민주노총은 67만 조합원을 넘어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한국 사회에 변화된 산업 생태계 속에서 고용·노동·복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공약은 조직 내 이슈에 한정됐다. 국민들은 직선제를 알지 못한다.”

민주노총도 직선제가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조합원이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질 계기가 될 거라 보고 있다. 박석민 직선제본부 기획팀장은 “직선제 선거인 명부 확인 과정에서 우리도 몰랐던 곳에 많은 조합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직선제 선거 안내를 하면서 한번이라도 더 연락하고 안부도 물으며 더 많은 조합원을 만날 수 있었다. 직선제로 운동의 질이 당장 바뀔 순 없어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종강 교수도 “우려는 많지만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라며 “이렇게 큰 조직이 직선제를 결정한 것 자체도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조합원이 직접 뽑은 위원장이 간선제로 선출된 위원장보다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나온다.

지난 11월 직선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직선제는 민주노총이 또 다른 변화와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지만, 직선제는 민주노총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투표율 미달보다 더 큰 걱정은 직선제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게 아닐까.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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