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비정규직 수리기사 싸움보다도 관심 못 끄네”
“비정규직 수리기사 싸움보다도 관심 못 끄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제8기 위원장과 임원을 뽑는 선거가 67만명의 조합원 직선제로 3일부터 9일까지 진행 중이다. 기호 1번에는 정용건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2번에는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3번에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4번에는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이 출마했다. 4일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겨레신문 지부의 조합원이 투표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준비 부족, 절차 문제로 연기 끝에
노동정치에도 ‘직접민주주의’ 도입
웬만한 나라, 지자체 선거 못잖아
67만 노동자가 직접 위원장 뽑는다 직선제를 돌파구 삼았다
봄바람 일지만 태풍급은 아니다
현장 노동자 싸움보다 주목 적어
높은 투표율로 새 위원장 나올까
위기의 민주노총, 미래가 달렸다 투표율 50%를 달성할 것인가 실제 김영훈 위원장은 2010년 당선된 뒤 예비조합원 명부를 모으며 전화 자동응답방식 투표 등을 검토했는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이 방식을 포기했다. 직선제 시한은 다가오고 준비는 미흡한 상황에서 유예안을 통과시킨 대의원대회가 절차적 문제로 무효가 되자, 김 위원장은 다시 한번 직선제 유예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위원장 사퇴’에 이어 대의원대회 정족수 부족으로 8개월간 위원장 선출이 연기되는 ‘직선제 유예 후폭풍’을 겪고 나서야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직선제 논의로 인한 후유증이 컸기 때문에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2013년 임기 1년 위원장 선거 때는 직선제 찬반이 아니라 ‘누가 직선제를 잘 완수할 수 있느냐’가 초점이 됐다”고 말했다. 첫 제안이 나온 지 16년 만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3일 직선제가 실시됐지만, 민주노총 안팎의 상황은 16년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유권자가 67만명 이상이고 투표소도 지방선거 투표소보다 많아 선거 관리와 성사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사회적 관심의 척도인 언론의 관심은 척박하다. 위원장 후보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8일부터 12월4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검색 누리집 ‘카인즈’에서 ‘민주노총 직선제’로 기사를 찾아보니 10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경비원’이나 ‘정윤회’ 관련 기사는 각각 721건, 1123건에 달했다. 좀처럼 뜨지 않는 선거 분위기는 ‘투표율 50%’에 대한 위기감을 낳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이번 선거 투표율이 50%가 넘지 않으면 개표도 못 해보고 재선거가 실시된다. 투표율 미달은 조합원의 무관심의 심각성과 그 무관심을 극복해낼 민주노총의 역량 부족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요즘 민주노총 출입기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투표율 50% 성사 여부다. 낯익은 후보, 비슷한 공약은 직선제로도 민주노총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67만 조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되겠다고 나선 민주노총의 위원장 후보들과 그들의 공약은 오늘날 민주노총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지만 후보자들의 공약은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미치지 못했다. 후보자들의 정파적 배경도 기존의 정파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직선제에 투입된 인원과 예산에 비해 선거운동의 방식은 새롭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부터 때론 현안 대응을 줄여가면서까지 사무총국 인원의 절반 가까이 직선제 준비에 투입했다. 예산도 민주노총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6억여원을 배정했다. 선거 관리는 탁월했을지 몰라도 선거운동 방식은 토론회, 현장유세 등 과거에 머물렀다. 팟캐스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고 웹툰, 영화, 드라마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직선제에 대한 무관심을 ‘서글픈 민주노조 운동의 자화상’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정파 구도에 갇히지 않고 청년 후보나 여성노동자가 위원장 후보로 나왔으면 더욱 주목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직선제는 그 자체로 조합원 직접민주주의 진작이란 의미가 있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을 바꿔내는 케이블방송·인터넷 설치 수리기사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만도 못한 상황이 됐다.” “우려는 많지만 한번은 넘어야 할 산”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직선제 선거가 민주노총 조합원을 넘어 국민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민주노총은 67만 조합원을 넘어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한국 사회에 변화된 산업 생태계 속에서 고용·노동·복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공약은 조직 내 이슈에 한정됐다. 국민들은 직선제를 알지 못한다.” 민주노총도 직선제가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조합원이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질 계기가 될 거라 보고 있다. 박석민 직선제본부 기획팀장은 “직선제 선거인 명부 확인 과정에서 우리도 몰랐던 곳에 많은 조합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직선제 선거 안내를 하면서 한번이라도 더 연락하고 안부도 물으며 더 많은 조합원을 만날 수 있었다. 직선제로 운동의 질이 당장 바뀔 순 없어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종강 교수도 “우려는 많지만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라며 “이렇게 큰 조직이 직선제를 결정한 것 자체도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조합원이 직접 뽑은 위원장이 간선제로 선출된 위원장보다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나온다. 지난 11월 직선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직선제는 민주노총이 또 다른 변화와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지만, 직선제는 민주노총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투표율 미달보다 더 큰 걱정은 직선제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게 아닐까.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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