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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월 30만원’=명품의 품격?…에르메스, ‘열정 페이 인턴’ 채용 논란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1-29 16:41수정 2022-08-19 17:45

[더(The) 친절한 기자]
근로자인 듯 근로자 아닌 근로자 같은 너
에르메스, 월 30만원 ‘열정 페이 인턴’ 채용 논란
사쪽 “교육 목적 채용, 불법 아니다” 해명 불구
‘교육생’과 ‘근로자’ 구분 명확치 않아 비난 일어
고용부 “무급 인턴 실태 조사…대책 내놓겠다”
에르메스 로고
에르메스 로고

28일 밤 누리꾼 사이에서는 프랑스산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코리아의 인턴 채용공고가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머천다이징·패션·회계 학과 학생 중 ‘MS Office 능숙자·영어소통 원활자’를 구하면서도 ‘별도 급여 지급은 없으며 식대 월 30만원 지급’이라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열정페이’ 아니냐는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2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상적 인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에르메스코리아의 채용 공고는 문제가 없는 걸까요? 합법·불법 인턴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복잡하고 미묘한 근로기준법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에르메스는 ‘근로자’ 아닌 ‘인턴’을 모집했을 뿐

에르메스코리아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커리큘럼에 따라 인턴을 교육하고 있다. 몇째 주부터 몇째 주까지는 어떤 걸 배울 수 있고, 그 다음주에는 어떤 걸 배울 수 있는지 자세히 규정돼 있다”며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공고를 올렸지만 일선 부서가 너무 바빠 인턴을 교육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뽑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에르메스코리아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교육 목적 채용이 명확할 경우 인턴은 법적 근로자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로자가 아니므로 인턴은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따라서 에르메스코리아의 ‘무급인턴’(식대 30만원을 주기 때문에 ‘저임금 인턴’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은 합법이 됩니다.

인턴은 향후 근로를 목적으로 사업장 등에서 교육·연수·훈련 등을 받는 이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기에 정의대로라면 인턴은 근로자가 아닙니다. 무급이든, 최저임금 이하를 주든 불법이 아닙니다.

문제는 명목상 인턴으로 사람을 뽑은 뒤 실제로는 근로자로 ‘부려’먹는 경우 발생합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인턴으로 뽑았지만 근로자로 간주해야 하는 경우’ 몇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다른 근로자들의 업무를 대체하게 하는 경우 △사업주가 다른 근로자들에게 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인턴을 지휘·감독하는 경우 △사업주가 인턴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은 경우 등입니다.

■ 어디까지가 교육인가?

합법·불법의 기준이 제시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실제 사업장에서 누군가의 업무 행태를 두고 ‘인턴이다’ 또는 ‘근로자다’라고 명확히 가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고용노동부도 이제껏 판단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법원 판례도 없습니다. 어떠한 선례도 없는 그야말로 백지상태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업주들도 볼멘소리를 낼만합니다. 그래서 기자는 고용노동부 쪽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어떻게 해야 인턴을 ‘교육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나요?”(기자)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면 명확합니다.”(고용노동부)

“‘사수-부사수’ 개념으로 일대일로 일을 가르치면서 ‘부려’ 먹으면 근로자인가요, 인턴인가요?”(기자)

“사수가 교육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별도로 할애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고용노동부)

고용부 관계자는 “판례도 없고, 행정지도 전례도 없다. 인턴·근로자를 가릴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만들 수 있을지 자료 검토 중”이라며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례들은 대부분 이름만 인턴이지 사실상 근로자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차라리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인턴을 보호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실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8월 “최근 취업난 때문에 ‘스펙쌓기’ 경쟁이 과열되면서 임금을 받지 않고 근로를 제공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기 힘들다”며 ‘무임금 근로약정자에게도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인 이 개정안을 두고 청년들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20대 인터넷 언론 ‘고함20’은 “‘인턴은 노동자가 아니라 교육생’이라는 말로 문제 제기로부터 도망치는 악습을 봉쇄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며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은 논평을 내어 “무임금 근로 종사자가 법에 규정될 경우 다양한 사업장에서 무임금 인턴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고용부는 청년유니온과 입장이 비슷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턴을 근로자의 한 형태로 규정할 경우 저임금 노동을 제도화시켜줄 위험이 있다”며 “또한 ‘인턴=근로자’가 되면 사업주들이 좋은 취지의 인턴제마저 운영하지 않게 된다. 인턴 제도는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하고, 명목상 인턴이면서 사실상 근로자인 경우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부는 지난 11일 무급인턴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으로는 관련 대책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어떤 묘안이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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