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30일 영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기업 건설사 부장 ㄱ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지급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ㄱ씨는 2008년 7월부터 쿠웨이트 플랜트 공사 시공팀장 업무를 맡게 됐다. 평소 영어실력이 달린다는 생각에 꾸준히 공부를 했으나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쿠웨이트 공사 현장에 다녀온 뒤로는 자신의 영어실력으로는 시공팀장 업무를 하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ㄱ씨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해외근무를 포기했다. 가족들에게는 “영어를 못해 해외파견도 못나가는 내가 부하직원들 앞에 어떻게 서야 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필 노트에는 “갑갑하고 답답하다. 영어 때문에 쿠웨이트에 못 간다. 쪽 팔린다. 국내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
스트레스가 심해진 ㄱ씨는 불면증, 체중감소, 대장염 등 여러 병까지 앓았다. 결국 2009년 1월 본사로 복귀한 첫날 옥상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다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심 법원은 “ㄱ씨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정도 사정이라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원심은 고인이 남긴 수첩의 기재내용을 비롯해 자살 전 고인의 언행 등에 관해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채 업무상 스트레스와 자살의 상관관계를 부정했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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