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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교육·복지 등 공공부문 일자리를 ‘1년짜리 계약’으로 끌고 가는 정부

등록 2015-02-02 20:31수정 2015-02-02 22:21

영어강사·방문간호사 등
사실상 정규직 업무인데도
해고위기 반복 상황 방치
정부가 국민 편의를 위해 교육, 복지 등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등이 비정규직을 대거 쓰도록 한 뒤 이들의 고용 책임은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대량 해고 위기가 되풀이되고 있다. 공공 서비스 확대에 앞서 정부가 해당 업무를 맡을 노동자의 안정적 고용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지역 초·중학교에서 정규 수업 시간에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이아무개씨 등 영어전담강사(영어강사) 4명은 지난달 30일 “고용 불안을 해소하라”며 전북교육청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에 나섰다 하루 만에 내려왔다. 고공농성은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이번 1학기부터는 주당 15시간 이상 수업시수를 확보하지 못한 영어강사는 채용하지 말도록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린 데 대한 항의의 뜻이었다. 이들은 1년 단위 계약직인데, 교육청 공문이 시행되면 현재 140여명인 전북지역 영어강사 가운데 110명가량(80%)이 일자리를 잃게 되리라 여겨 농성을 벌였다.

이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2일 “‘고용 불안이 없도록 하겠다’는 전북교육청의 약속을 받고 농성을 해제했다”며 “전국적으로 이번 1학기에 해고될 영어전담강사의 수가 최소 126명에서 최대 397명에 이르리라고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09년부터 이들 영어강사를 학교 현장에 투입했다. 2008년 초,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이경숙 위원장이 ‘아린쥐’(orange) 논란 속에 영어몰입교육 등을 주창한 뒤 읽기·쓰기 중심의 공교육 영어 학습을 듣기·말하기 중심으로 전환해 영어 공교육의 실용성을 높이고 일반 가정의 과도한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정책 목표에 따른 것이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영어강사는 학교 현장에서 상시적으로 지속될 업무인데도 정부는 정규교사 정원 등의 문제를 들어 1년짜리 단기 계약직으로 노동자를 뽑아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영어전담강사는 전국적으로 5400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정부가 상시지속적인 공공 서비스 확대를 내걸고 비정규직을 대거 뽑은 뒤 해당 노동자의 고용 안정엔 두 눈을 감는 문제는 복지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전국 보건소 소속으로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 의료·건강 상담 및 간단한 진료를 하면서 2년 이상 1년 단기계약직으로 일해 온 ‘방문간호사’ 2500여명도 지난해 말 각 지자체가 무기계약직화하는 대신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등 변형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해 해고대란 위기에 몰려 있다. 방문간호사는 전국적으로 5000여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는 방문간호사 사업을 시작한 2007년 3월 말 낸 보도자료에서 “(‘찾아가는 보건소’ 사업으로) 국가는 국민 체감도가 높은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적극 발굴해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뇌졸중, 치매 등 만성질환 합병증을 조기에 예방해 국민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국민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이런 정책들에는 공통점이 여럿 있다. 우선 정부가 2년 이상 고용하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기간제법)의 기간제한 예외조항을 만들어 공공 서비스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장기화하는 대목이다.(표 참조) 방문간호사는 사업이 5년8개월가량 지속된 2012년 말까지는 법상 기간제한 예외규정인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로 보고 매해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하다가 상시지속적 업무임을 인정하고 다시 기간제한 적용 대상으로 바꿨다. 영어강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부는 2009년 시작할 때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꿔 영어강사의 경우 최대 4년까지 계약을 반복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정부는 이들을 무기계약직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각 지자체가 고용한 지 2년 된 방문간호사들을 대거 해고한 뒤 신규채용할 때에도 “이들의 고용주체는 지자체장”이라며 지켜보기만 했다. 영어강사도 2009년 시·도교육감들이 채용 공고를 낼 때는 “정년 62살” 등을 내세워 마치 무기계약직이 가능할 것처럼 뽑고는 지금껏 중앙정부나 교육감 모두 나몰라라 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가 불법의 소지가 매우 큰 상황을 방치하거나 사실상 조장하는 측면이다. 방문간호사는 사업 첫해부터 같은 보건소에서 1년짜리 계약을 8번 갱신하고, 영어강사도 같은 학교에서 죽 일하면서 근로계약을 6번 갱신하며 일해온 노동자가 상당수에 이른다. 영어강사와 방문간호사 모두 2013년 1월 이전부터 2년 이상 일해 온 상당수 노동자는 기간제법을 적용해 이미 같은 기관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고용의제)으로 봐야 하는데도 정부가 불법을 방치하는 셈이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기간제 노동자가 고용계약 기간에 비록 신규채용 절차를 밟았더라도 같은 사업장에서 오랜 기간 단절 없이 일한 경우에는 기간제한 2년을 적용해 적어도 무기계약직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관된 판단을 하고 있다.

정부가 이들 공공 서비스 노동자의 고용 책임을 지자체장이나 교육감한테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가 과거의 약속에만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들 사업엔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방문간호사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인건비를 부담하고, 영어강사는 전체의 30%를 중앙정부가 부담할뿐더러, 지자체 예산의 상당 부분도 중앙정부가 주는 지방재정교부금에서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공공부문 전반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정부가 공적 서비스의 이름으로 나쁜 일자리를 만든 뒤 책임을 지지 않아 민간 부분에 좋지 않은 신호를 주고 있다”며 “정부가 이제라도 공공부문이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화와 예산 배정 등에 대한 고민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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