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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여전히 노동자 쪽 희생 강요…노사정 논의 ‘장기 표류’ 조짐

등록 2015-04-06 21:42

노총 “파견 확대 등 일부 진전 불구
정부,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 고집
노동계로선 절대 수용못할 제안”
“노총, 협상서 철수해야” 주장 나와
8일·16일 노조 대표자 회의 고비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둘러싼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장기 표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사-정 사이에 사회적 대화를 할 만한 신뢰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 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의 구조가 부른 ‘불발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른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6일 대구지역본부를 찾은 자리에서 “그동안 논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 등에 대해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정부가 마지막까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방침을 굽히지 않았고, 이는 노동계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며 “노동계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짓밟히는 합의는 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정부가 화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8일 오후 26개 산별조직 대표자와 16개 지역본부 의장이 참석하는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여는 데 이어 16일에는 3000여명의 단위노조 대표자와 간부가 참석하는 단위노조 대표자 회의를 잇따라 열기로 해 노사정 논의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노사정위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 굉장한 난관에 봉착했고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맞다”면서도 “마지막까지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이후 공식 회의를 열지 못하게 하는 핵심 쟁점은 김 위원장의 언급대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과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한국노총이 ‘5대 수용 불가 사항’ 가운데서도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꼽은 두 가지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은 임금 등 노동조건을 정한 취업규칙의 내용을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바꿀 때는 반드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이다.

사용자 쪽은 “이 요건을 완화하자”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노동계는 기업이 제멋대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현재 연공급 중심인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토대가 될 위험이 있다며 반대해왔다. 한국노총은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해 노동자 열에 아홉은 단체협약도 없이 취업규칙에만 노동조건을 의존해야 하고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선 한국의 상황에서 이 요건을 완화하게 되면 노동의 불안정성이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은 노동자 평균 근속연수가 5.2년에 불과하고, 내년부터 정년이 60살로 의무화됨에도 대부분 노동자가 50대 초반이면 퇴직하는 상황에서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이 노동자 개별 해고를 부추기게 되리라고 본다. 이미 집단해고와 관련해서는 법원이 미래의 경영 위기를 이유로 한 정리해고까지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명예퇴직을 통해 3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핵심 사안 모두 “요건 완화가 아니라 명확화하자는 것”이라는 정부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이 깊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재의 논의 구도로는 노사정 합의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용자 쪽이 ‘노조가 정규직의 이익만 도모한다’고 말하지 말고 노동시장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사람한테 뭔가 제공해야 교섭이 진행될 텐데 아무것도 없이 합의하자는 사용자의 교섭 태도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날 노동계 안팎에서는 현재의 노사정위 판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성명을 내어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의 양보만 요구하고 있으니 애초부터 방향이 잘못 설정된 것”이라며 “한국노총은 지금 바로 노사정 협상을 중단하고 노사정의 이름으로 자본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협의 테이블에서 철수를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노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해 중재와 조정의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재계와 한 몸이 되어 노동계에 합의를 강요하고 있다”며 “이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김민경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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