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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실적 압박·부당인사 등 출판사 ‘갑질’…29살 청년 편집자는 꿈을 뺏겼다

등록 2015-04-12 15:22수정 2015-04-13 13:59

잦은 해고와 야근·주말근무 등 출판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그 심각성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좁은 바닥이라 입 한번 잘못 열었다가는 업계에 발붙이기 어려운데다 스스로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기보다 문화인·지식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박미향 기자
잦은 해고와 야근·주말근무 등 출판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그 심각성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좁은 바닥이라 입 한번 잘못 열었다가는 업계에 발붙이기 어려운데다 스스로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기보다 문화인·지식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박미향 기자
‘자음과모음’ 입사 10개월만에 ‘부당 인사’ 진정 낸 사연
출판 편집은 지식 노동이다. 인문서 편집은 저자를 통해 세상의 모순을 고발하는 일이다. 윤정기는 출판사 ‘자음과모음’ 직원이다. 2014년 5월26일 입사했다. 그가 편집한 첫 책은 이경자의 소설 <건너편 섬>이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3월31일, 윤정기는 모순의 당사자가 됐다. 자음과모음에서 벌어진 각종 부당 행위를 근거로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는 29살 청년의 꿈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10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 역순으로 되짚었다.

#2015년 3월 : 부당 인사

입바른 소리 하자 권고사직 종용
수용 않자 창고직 발령 일방통보

자음과모음은 25일 인사 발령을 냈다. 편집자 윤정기는 물류팀 소속이 됐다.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32㎞ 떨어진 경기 파주시의 물류 창고로 출근하는 보직이었다. 강병철 사장은 물류팀 간부에게 “윤 사원은 재고 파악만 합니다. 다른 건 시키지 마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사전 협의 없는 일방 통보였다. 직원들이 술렁였다.

하루 전인 24일. 정은영 주간은 윤정기와 면담했다. “같이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회사로서 할 수 있는 건 권고사직 처리”라고 말했다. 윤정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고사직 대신 돌아온 건 생소한 업무였다. 창고에서 책 운반과 택배 포장, 재고 관리, 입고 도서 정리를 한다. “인사 발령을 보고 헛웃음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 발령을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가라는 얘기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윤정기의 동료 직원 ㄱ씨의 말이다.

왜 그랬을까. “작가나 편집위원, 팀장들과 마찰이 많았다. 기자들의 작가 인터뷰 요청이 와도 작가, 편집장과 상의 없이 지방에 사시니 인터뷰할 수 없다고 거절한 적도 있다.”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주간의 해명이다. 윤정기의 업무 태도가 불량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윤정기는 “인터뷰를 거절한 적도, 편집위원들이나 작가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도 없다. 팀장들과는 업무 분장 때문에 지시 사항을 재확인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팀장들과의 ‘마찰’은 업무상 논의 수준이었어요. 작가나 편집위원들과의 마찰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윤정기가 튀는 직원이라거나 문제 사원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동료 직원 3명의 공통된 진술이다.

문제점1)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에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권고사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유로 당사자 동의 없는 업무 변경은 이 조항 위반이다. 업무 변경은 △업무상 필요성 △당사자 선정의 적정성 △불이익의 정도 △당사자와의 협의 절차 등을 따져 정당성을 판단한다. 필요성과 적정성은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

#2014년 12월 : 실적 강요

1인당 월매출 4500만원 강요도
전체회의때 한사람씩 구두보고

자음과모음은 수시로 조직을 개편했다. 2014년 12월 조직개편에는 2년차 이상 편집자를 기획팀, 그 이하를 교정팀으로 분류했다. 윤정기는 교정팀에 배치됐다.

직원들은 매달 실적보고를 한다. 엑셀파일로 만든 ‘자기업무평가서’다. 회사가 ‘위기 상황’일 때는 ‘편집자 1인당 월 4500만원’ 매출을 강요받을 때도 있었다. 강 사장은 전체회의에서 한 명씩 구두로 실적 보고를 하도록 했다. 광고비와 반품 서적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실적이 나오는 직원도 있었다. 차마 보고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직원에게 강 사장은 “꼴보기 싫으니까 나가라”라고 소리쳤다.

실적은 교정팀에 더 집요하게 강제됐다. 책 교정 작업을 세밀하게 비용 처리한 뒤 외주로 교정을 맡기는 비용과 견주게 했다. 비용 산정 원칙은 이랬다. ‘새책은 원고지 매수당 교정 외주 비용의 60%. 개정판은 이 비용의 30%. 재쇄는 권당 3만원으로 일괄 처리.’ 강 사장은 ‘지시 사항’으로 “외주 교정은 집에서 하는 건데, 너희는 회사에서 공간도 쓰고 전기도 쓰니 60%로 책정한다”고 말했다. “너네 몸값이 그 정도 되는지 보자”라고도 말했다.

“회사의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것이고, 교정팀 개인의 업무 평가를 스스로 해보게 하기 위해서다. 실적이 미비하다 해서 문책을 하거나 급여에 반영한 적은 전혀 없다. 모든 출판인들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저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 사장과 정 주간의 해명이다. 하지만 교정팀 직원들은 입을 모아 “매달 자신의 월급 이상으로 역할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질책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제점2) 노동 계약의 부수적 의무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를 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과 인격권을 보호해줘야 하는 배려의 의무가 있다. 노동자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발생한 회사 매출 감소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은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를 괴롭히는 행위다. 의무 위반이다.

#2014년 11월 : 근로계약서 미작성

노동부 감사 나오자 ‘날림 작성’
근무처 달리 적어 탄압 의혹도

입사 이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노동부가 감사를 나왔다. 자음과모음은 직원들을 1명씩 불러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게 했다. 경영지원팀 쪽은 직원들에게 “이 근로계약서는 감사 때문에 그냥 쓰는 거다.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니까 일단은 사인을 해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윤정기는 계열사인 ‘이지북’ 소속이라고 적힌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해야했다. 이지북은 실용서 브랜드다. 윤정기는 이지북 책을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 ‘2014년도 사업장 건강검진 대상자 명단’을 보면, 이지북 소속 직원은 3명이다. “저는 항상 (주)자음과모음 직원으로 일해왔고, 월급 통장에도 항상 ‘자음과모음’이 찍혔어요.” 윤정기의 말이다. “감사가 나오니까 날림으로 근로계약서 쓰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윤정기는 이지북 책을 한 번도 다루지 않았는데, 거기 소속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어요.” 동료 직원 ㄱ씨의 말이다.

4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부당해고나 휴업수당, 연장근로의 제한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밉보인 윤정기를 내치기 위해 일부러 4인 이하 사업장에 배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자음과모음은 그동안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왔다. 다만 2013년 5월 이후 대표가 바뀌는 등 어려움이 있었고, 2014년 한 해 동안 경영지원부 인사 담당이 3번 바뀌면서 새로 입사한 직원들의 근로계약서 작성이 늦어졌다. 윤정기의 ‘이지북’ 소속은 잘못 표기된 실수였다.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 강 사장과 정 주간의 해명이다. 2009년 작성된 계약서도 한 통 내밀었다. 하지만 ‘사재기 논란’으로 강 사장이 대표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힌 2013년 5월 이전에 입사한 한 직원은 “이전에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복수의 다른 직원들도 진술은 같았다.

문제점3) 근로기준법 17조와 시행령 제114조 제1호를 보면,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 등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14년 9월 : CCTV 설치 추진

사생활 침해 반발로 무산됐지만
사장이 문제제기 직원들에 고성

자음과모음은 갑자기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쌤앤파커스 성추행 논란’으로 출판계가 시끄러울 때였다. 직원들은 또 술렁였다. “치마를 입고 주저앉아 책 택배를 싸는 일을 해요. 불안할 수밖에 없지요.” 여성 직원 ㄴ씨의 말이다. 회사 쪽은 “전자책 사업을 하는데 컴퓨터 안에 중요한 파일을 주말 사이 누가 가져갈 수 있다”고 밝혔다. 윤정기가 “사업장 내 CCTV 설치는 직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고, 다른 직원들도 사내 게시판에 의견을 적었다.

강 사장은 이 직원들을 불렀다. 화를 냈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고,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 입증을 해야 하는데 너희가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너희는 왜 이렇게 회사를 못 믿느냐”는 말도 했다. 고성이었다. 결국 CCTV 설치는 무산됐다. 윤정기는 이때부터 강 사장의 눈 밖에 났다. 회의에서 윤정기가 낸 출판 기획 의견을 두고 강 사장은 “그건 네 취미 생활이니까 니가 출판사 차려서 해”라고 공개적인 면박을 줬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도 윤정기가 딱히 밉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 폭언은 일상이었으니까요.” 동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전자책은 데이터나 중요한 솔루션 소스가 있으니 만일을 대비해 CCTV 설치를 하는 것이 어떤지 건의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강 사장과 정 주간의 해명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입을 모아 회사 쪽이 “CCTV 설치는 이미 정해졌고 동의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문제점4) 동의 없는 CCTV 촬영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회사 생활에서도 사생활의 보호 필요성은 존재한다. 특히 노조원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 일상 : 폭언과 24시간 카톡 지시

남성직원들에겐 “×만한 새끼”
여성들에겐 공개 모욕·비아냥

강 사장의 폭언은 일상이었다. 남성 직원들에겐 거리낌없이 “X만한 새끼”라고 말했다. 여성 직원에게 욕설은 하지 않았지만 면전에 대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발언을 했다. 어린 연차의 직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쟤가 그런 일을 할 군번이냐”라며 비아냥댔다. 자음과모음이 두 번째 직장인 한 편집자는 “전 직장에선 오너가 일에 관여해도 무엇이든 합의 처리하려 애썼다. 그런데 여기는 강 사장 마음대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강 사장의 업무 지시는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카톡으로 밤 10시에도 지시가 오고, 새벽에도 지시가 와요. 외국 출장을 가면 시차가 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업무 지시를 하죠. 스트레스가 컸어요.” 또 다른 여성 직원 ㄷ씨의 말이다. 저녁 시간에 근무하는 연장근로는 거의 매일 이뤄졌다. 오후 10시 이후에 이뤄지는 야간근로는 일주일에 2~3차례 한다. 하지만 야근 수당은 나오지 않았다. “야근 수당을 사전 신청하라는 공고가 딱 한 번 있었어요. 그런데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ㄷ씨의 말이다. 윤정기는 “지난해 11월 올린 야근수당 결재가 계속 승인나지 않다가 최근에 반려됐다”고 말했다.

“사장님 본인의 표현이 강할 때도 있고, 기획 의도를 설명하면서 격투기 등과 비유해서 설명할 때도 있다. ‘공격은 선방이다’ 이런 류다. 폭언과 망신주기라는 주장은 일방적인 명예훼손이다.” 강 사장과 정 주간의 해명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입을 모아 “모욕적인 말과 성희롱성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문제점5) 폭언은 내용과 정도에 따라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 형사범죄가 될 수 있다.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민사상 책임도 따질 수 있다.

#2014년 5월 : “책을 만들고 싶다”

윤정기는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대학 때부터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었다.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편집자 공채 관련 글이 올라오는 인터넷 편집자 전문 사이트 ‘북에디터’에 자음과모음 편집자 공고가 뜬 것을 봤다. ‘문학·인문 편집자’ 모집이었다. 윤정기는 문학과 인문 책을 만들고 싶었다. 자음과모음은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에서 쟁쟁한 한국인 저자들을 모아 ’하이브리드 총서’를 펴내고 있다. 합격했다. 생애 첫 직장이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의 꿈이 막 시작되려 한다.

*이 기사는 윤정기와의 세 차례 인터뷰, 복수의 자음과모음 전·현직 직원들과의 인터뷰, 관련 증빙 자료, 자음과모음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주간의 해명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문제점 다섯 가지는 출판노조협의회가 소속된 언론노조 장영석 노무사의 자문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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