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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3000일 설움 담아 부르는 노래 ‘서초동 점집’

등록 2015-04-30 19:58수정 2015-05-01 00:34

해고 노동자가 된 지 3000일째 되던 날 떠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전국 음악여행. 이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지난 26일 오후 경북 칠곡군 석정읍 스타케미칼 공장 안 굴뚝에서 335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광호씨를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칠곡/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해고 노동자가 된 지 3000일째 되던 날 떠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전국 음악여행. 이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지난 26일 오후 경북 칠곡군 석정읍 스타케미칼 공장 안 굴뚝에서 335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광호씨를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칠곡/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음악투쟁’
2007년 4월9일은 이인근 콜텍 지회장에겐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포장일을 하던 그가 여느때처럼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했더니 회사 문이 잠겨 있었다. 해고 노동자의 삶이 시작된 날이다. 그로부터 3000일째 되는 날인 지난 20일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은 기타를 메고 전국 음악여행을 떠났다. 진도 팽목항, 제주 강정마을을 들러 창원, 울산, 밀양 등에서 공연을 열며 콜트콜텍 복직투쟁을 알리는 여행이다.

29일 저녁 7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인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협동조합 카페 ‘두머리부엌’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맞서 3년 4개월여 동안 유기농지 보존 싸움을 벌여온 두물머리 주민들은 그전부터도 철마다 콜트콜텍 농성장에 채소, 과일들을 보내주곤 했단다. 이날도 콜트콜텍 선물함에는 농민들이 가져온 과일과 빵, 약초들이 쌓였다.

밴드 결성 대법판결 풍자 자작곡
해고 3000일이던 지난달 20일부터
팽목항·강정마을·밀양 돌며 공연

“해고 덕에 요리·연극 해봐” 쓴웃음
9일 서울 보신각서 기념 공연도

아코디언과 기타를 들고 온 2인조 밴드 엄보컬 김선수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연주하며 시작한 공연은 뜻밖에 밝고 유쾌했다. 푼돈들, 단편선 등이 투쟁가가 아니라 위로와 연대의 노래를 이어가는 동안 주민 40명이 박수를 치며 공연장을 지켰다. 공연의 절정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맡았다. “못배운게 죄인게 알아듣게 얘기해요.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내린 무당인가”라며 신랄하게 읊조리는 노래 ‘서초동 점집’은 2014년 6월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며 회사쪽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을 풍자한 것이다. 해고되고 나서야 난생 처음 기타를 연주해본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만든 자작곡이다. 노래 ‘서초동 점집’을 만들고 콜밴에서 북을 두드리는 임재춘씨는 “요리, 연극에 밴드까지, 해고당한 덕에 안해본 일이 없다”며 쓰게 웃었다. 그 ‘안해본 일’에는 6차례의 해외 원정 시위, 40차례의 재판, 그리고 한 노동자의 분신까지 포함됐다.

기타를 만드는 제조업체 콜트악기와 자회사 콜텍은 전자 기타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나 되는 회사지만 2007년 4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하고, 7월엔 계룡시에 있는 콜텍 악기를 위장폐업, 남아 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대법원이 해고 무효 소송을 기각하면서 이들은 ‘합법적인’ 정리해고자가 됐다. 그러나 콜트콜텍 해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예술가들은 ‘콜친 커뮤니티’를 만들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인근 지회장은 “서울로 귀환하면 9일엔 보신각에서 3000일 페스티벌을 연다. 5월부터는 시민단체와 연대해 콜트콜텍만의 해고 무효 싸움이 아니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음악문화 공간인 클럽 ‘꿈의 공장’을 만들기 위해 후원금도 받는 중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서울 홍대앞 클럽 ‘빵’에는 음악가들이 자진해서 마련한 콜트콜텍 수요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2008년 12월에 시작한 뒤 단 한달도 쉬지 않고 열린 문화제 무대엔 지금까지 500명의 음악인들이 다녀갔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30일 강원도 홍천에서 골프장 반대 문화제에 합류했다가 1일 서울로 간다. 해고된지 3012일째 되는 날이다. 해고노동자의 시간은 이렇듯 무겁지만 한발한발 앞으로 간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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