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노동절인 지난 1일 ‘3년 전 만난 해고노동자들…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뒤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모였던 또다른 해고노동자 13명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기획이었습니다.
한겨레는 그 후속 기획으로 13명의 해고노동자들 개개인의 세밀한 삶을 글과 사진으로 전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획은
‘다음 뉴스펀딩’을 통해서도 소개됩니다. 뉴스펀딩은 독자들의 후원을 받아 독자와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 생산 방식입니다.
한겨레와 다음은 뉴스펀딩을 통해 모아지는 후원금을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단체인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잡고)에 전달할 것입니다. 1만원 이상 후원해주신 분들은 해고노동자 13명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초대가수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토크콘서트에 초청할 계획입니다.
케이이씨 해고노동자 한정희. 복직.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경남 구미에 있는 반도체 부품 제조회사 케이이씨(KEC)는 2012년 2월24일 노동자 75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3개월 만에 철회했다. 기뻐야 할 일인데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던 한정희(42)씨는 “해고 철회 소식을 듣고 우리는 화가 많이 났어요. 바로 다음날 경남지방노동위원회 해고 무효 소송 결정이 예정돼 있었거든요.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걸 인정받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복직이 기쁘지 않다니. 케이이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6월 금속노조 케이이씨지회는 노조 전임자 처우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같은 달 직장을 폐쇄했다. 파업은 2011년 5월 노조 조합원들이 복귀할 때까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2년 2월 케이이씨는 지회 소속 조합원 75명을 정리해고했다.
한정희(왼쪽), 이미옥씨 해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케이이씨에서도 그해 2월 ‘인력구조조정 로드맵’이란 문건이 작성됐다. ‘파업자의 회사복귀는 원칙적으로 차단→전원 퇴직 원칙. 자발적 퇴직자 기준 미달일 경우→인력 구조조정 단행. 친 기업 성향의 노동조합 설립→회사 경쟁력 강화 협조체제 구축.’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2012년 10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인력구조조정 로드맵 문건대로 해고 대상자 75명이 모두 파업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이었다”며 “정리해고는 노조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그런데 2014년 11월27일 서울행정법원은 “문건이 실무자 단계에서 폐기된 자료라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파업 참가를 이유로 해고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중노위 판단을 뒤집었다. 노조 탄압 보다 정리해고의 요건인 회사의 ‘경영상의 판단’에 무게를 둔 탓이다.
법으로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해 처벌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2013년 중앙·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은 11.3%, 검찰의 기소율은 2.7%, 법원의 징역형 선고율은 7%에 그쳤다. 노조 활동을 하다 탄압받고 해고에 이르러도 구제할 길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케이이씨 해고노동자 이미옥. 복직.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동자들은 제 목소리를 냈다고 해고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1988년 케이이씨에 입사한 이미옥(45)씨는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일이 있으면 휴일수당도 받지 않고 일하기도 했다. 그는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가입은 했지만, 2010년 전까지 경조금 받으러 노조에 딱 3번 갔다. 파업했을 때 친한 동생들을 ‘꼬셔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채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나 2010년 파업에 참여하면서 이씨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회사가 잘 되는 게 내가 잘 되는 거라 생각하고 많이 참으면서 일했어요. 회사가 정말 어려우면 임금도 깎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파업한다니까 용역 수백명이 들어와서 위협하고,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복직한 다음에는 7주간 반 인권적인 교육을 시키더니 해고까지….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억울했어요.”
쓰리엠 해고노동자 이경중. 복직.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되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2013년 복직한 한국쓰리엠 노동자 이경중(35)씨도, 14년 간 복직의 끈을 놓지 않는 시그네틱스 노동자 윤민례(46)씨도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됐다.
이경중씨는 2011년 회사 안에서 집회를 열려고 스피커를 들이려다 벌어진 실랑이를 빌미로 징계해고됐다. 이씨는 2013년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받기 까지 긴 법정 투쟁의 터널을 거쳐야 했다. 그는 “처음 법원에서 이겼을 때는 ‘회사가 복직시켜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대법원까지 계속 가는 거예요. 그래도 그나마 당시 해고자들 중에서 제일 빨리 복직하긴 했어요”라고 말했다.
시그네틱스 해고노동자 윤민례. 해직 중.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그네틱스 해고자 윤민례씨는 2001년 노조의 공장 이전 반대 파업을 했다 해고됐다. 파업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더라도 공장 이전·정리해고·공공기관 단체협약 등을 바꾸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같은 정부 정책 반대를 내세운 파업은 모두 ‘불법’이다. 윤씨와 함께 해고된 130명 중 소송에 참여한 95명 중 65명은 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됐다. 그러나 당시 노조 간부였던 윤씨 등 29명은 ‘불법파업 주동자’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복직한 동료들은 2011년 정리해고됐다 또 다시 법원 판결로 복직됐다. 2000년대 이후 금속노조 시그네틱스지회는 해고·복직 싸움의 반복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윤민례씨는 “일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라며 복직을 꿈꾼다.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도 버리지 않았다. “아직도 그때 입던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꿈을 꾼다니까요.” 윤씨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해고노동자들이 2호선 지하철에서 종이가면을 쓰고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의 탄압을 받고 있다. 2년 전 노조를 만든 삼성전자서비스 양천센터에서는 센터를 운영하는 삼성양천서비스 대표의 탈퇴 회유와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는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 탈퇴서 작성 방법을 알려주며 “노조 인정은 대외용일 뿐이다. 미쳤다고 노조를 인정 하냐. 노조원들을 다 빼낼 것이다”고 협박하거나, “탈퇴를 하면 전동드릴를 사주겠다”고 회유했다. 단지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건당 수수료를 받는 설치기사들에게 업무를 주지 않아 월급을 깎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4월 양천센터 대표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이런 나라에서 노조 활동은 때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업체인 이지테크 노동자 양우권(50)씨는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는 말을 남기고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지테크에 1998년 입사한 양씨는 2006년 노조를 만들었지만, 한때 50명이던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이지테크분회 조합원은 지금은 모두 탈퇴하고 혼자 남았다. 양씨도 2011년 4월 해고됐으나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지난해 5월 복직했다.
그러나 회사는 양씨를 원직 복직 시키지 않고 특별한 업무도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활동으로 해고를 겪으며 양씨는 4년째 우울증, 수면장애를 겪을 정도로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해왔다. 양씨는 떠나는 순간 가족뿐 아니라 노조 조합원들에게도 마지막 말을 남겼다. “민주노총 그리고 금속노조 조합원 동지 여러분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어 가열차게 투쟁하여 꼭 승리하십시오.”
글 김민경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