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후세인, 까지만, 라쥬, 마숨, 토르너, 소부르.
고용노동부가 2005년 5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조합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뒤 이어진 법무부의 단속으로 고국인 필리핀·네팔·방글라데시로 추방된 이주노조 간부들의 이름이다. 지난달 대법원이 8년여 만에 10쪽짜리 판결문을 내놓기까지 이주노조는 노조가 아니었다. 대법원은 피부색이 하얗건 까맣건, 합법적 체류 비자를 갖고 있건 없건 누구나 노동3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7일 이주노조에 설립신고 필증을 내어주는 대신 규약을 고치라고 다시 어깃장을 놨다. 이주노조 규약에 담긴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등을 고치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노조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인 노동조합법 2조4항의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부의 이런 요구는 10년 전 이주노조를 부정할 때는 등장하지 않은 논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취임 뒤 이른바 ‘불법체류자’의 대규모 사면 조처를 취한 마당에 한국의 이주노조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를 내건 게 극단적인 요구라고 보긴 힘들다.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 또한 반사회적인 게 아니다. 입법권자가 노조법에 2조4항을 둔 까닭은 노조가 정치집단에 휘둘려 노조의 자주성을 잃을까 우려한 때문이다. 신고제인 노조 설립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라고 고용부에 쥐여준 ‘흉기’가 아니란 얘기다.
무엇보다 정치체제의 민주적 재구성이 없는 노동조건 개선은 무망한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줄곧 “노조의 일반적인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임금 인상을 통한 중산층 확대를 위해 노조의 교섭력을 크게 확대하자고 외치는 때, 바다 건너 한국에선 시대착오적 논리를 들이밀며 노조 설립조차 못 하게 한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전종휘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