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한국에 온 뒤 24년간 마석가구공단 등지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로저(51·맨 오른쪽)가 고국 인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18일 저녁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에서 환송연을 마 친 뒤 센터의 이정호 관장이 선물로 준 십자가를 손에 들고 있다. 원 안은 1995년 당시 로저의 얼굴 사진이다. 남양주/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19일 저녁 8시55분 인천국제공항. 마닐라행 에어아시아 Z2085편의 문이 닫히고 동체가 117번 게이트와 작별을 고한 뒤에야 필리핀 노동자 로저(51)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륙과 함께 20대 이후 자나깨나 그의 영혼을 옥죄던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의 공포도 활주로와 함께 멀어져 갔다. 이렇게 24년 동안 ‘불법 사람’으로 불리던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떠났다.
로저는 스물일곱살이던 1991년 12월, 필리핀에는 없는 계절 ‘겨울’ 칼바람을 난생처음 맞으며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그는 아는 사람 소개로 서울 면목동에 있는 가죽점퍼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재단된 가죽 재료에 접착제를 바른 뒤 구겨지지 않도록 망치로 두들겨 펴는 게 그의 일이었다. 1993년 5월 마석가구공단으로 일자리를 옮긴 건 시도 때도 없이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터져나오는 면목동 사장의 막말 때문이었다. 경기도 마석의 작은 공장에서 가구 만드는 일을 배웠다.
“여기도 똑같아. 아침 9시부터 일 시작인데 8시40분에 나가도 사장이 ‘야 이 새끼야 왜 빨리빨리 안 나와’ 하고 욕했어. 내가 ‘사장님, 왜요. 내가 뭐 잘못했어?’ 그러면 멈췄어. 근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 17일 마석가구공단에 있는 집에서 고향에 가져갈 짐을 싸던 로저가 과일주스를 따라주며 말했다. 마석엔 이주노동의 힘겨움을 나눌 필리핀 동포도 많고 공장 분위기를 정히 견디기 어려울 땐 옮길 공장이 즐비한 덕분에 가구공단 노동자 가운데 가장 긴 22년2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며 로저는 웃었다.
흩날리는 톱밥과 먼지, 접착제와 가구용 도료의 매운 냄새, 매일 이어지는 힘겨운 야근에도 로저를 매일 공장으로 이끈 동력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여느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요즘 한국인 관광객들이 종종 찾는 필리핀 민도로 섬엔 그의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아들 둘이 산다. 대학에서 경찰학을 전공하는 큰아들과 태어난 지 열한달 된 둘째는 마석가구공단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로저의 어릴 적 고향으로 보내졌다. 로저의 노동이 그들 삶의 ‘경제적 기반’이다.
로저가 1995년 가구공단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의 대표 자리에 오를 때만 해도 마석가구공단엔 하루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타향살이의 힘겨움에 술을 마신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흔했다. 도박도 이주노동자 사회를 좀먹는 ‘사회악’이었다. 로저는 필리핀 대표가 되자마자 다른 나라 공동체 대표와 공동회의를 열어 문제 해결에 나섰다. 도박과 술 자제령을 내리고 일부 말썽꾸러기들한테는 공동체 차원에서 대응했다. 공단은 그렇게 평온을 찾았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그를 ‘메이어’(시장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석가구공단에서 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관장을 맡고 있는 이정호 신부는 “로저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사고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제 월급을 털거나 공동체 모금을 해서 도왔다. 공단 필리핀 공동체를 위해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다”라고 말했다. 로저는 1996년께 공단 입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불타는 차량에 홀로 뛰어들어 한국인들을 구하는가 하면 올해 3월에는 공단에서 일어난 화재 진압에 출동했다 무너진 담벼락에 깔린 소방관을 구조하기도 했다. 그래도 로저는 한국 정부에 ‘불법체류자’일 뿐이다. 가구공단에서 18년째 미등록 이주노동을 하는 필리핀 여성 마리앤(40·가명)은 “메이어가 참 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다. 오래 여기서 살았는데, 간다고 해 섭섭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노동자 100여명은 18일 오후 복지센터에 모여 로저를 위한 성대한 환송파티를 열었다.
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 체류자’ 단속이다. 체류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수시로 공단 골목길이나 마석시내 등지에서 단속돼 이 땅에서 사라진 이주노동자가 부지기수다. 24년을 버틴 그도 4월20일 공장에 들이닥친 단속반원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그냥 공장에 들어와서 ‘야, 비자 있어?’ 그래. ‘없어요’ 하니까 그냥 잡아갔어. 단속 오면 정말 무서워.” 그날 로저 공장에서 다섯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잡혔다. 늘 그렇듯 필리핀 노동자 한명은 단속을 피해 도망하다 다리를 크게 다쳤다. 사흘째 양주외국인보호소에 잡혀 있던 로저를 위해 이정호 신부가 공탁금 300만원을 내고 석달짜리 일시보호 해제를 얻어냈다.
“다른 나라 보면 (불법 체류) 몇년 되면 비자 줘. 근데 한국은 10년, 20년 돼도 비자 안 줘. 이 세상에 불법 사람이 어딨어?” 미국·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인력 수입국인 유럽 등지에선 종종 미등록 외국인한테 영주권을 주는 대사면을 실시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말 한국인 수만명을 포함해 불법 체류 외국인 400여만명이 체류비자 발급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사면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180만명 시대를 맞은 한국에선 그저 남의 나라 얘기다. 범죄와는 담 쌓은 채 24년 동안 성실히 일하고 공동체에 기여한 로저 같은 이도 언제든지 걸리면 쫓겨난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2일 공단 내 성당에서 로저를 만나 “미안하다”고 말한 배경이다. 성공회대 총장 출신으로 마석가구공단에 있는 성공회성당 미사를 종종 집전해 로저를 잘 아는 이 교육감은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로저처럼 착하고 헌신적이며 공동체 결속을 위해 구심점 노릇을 해온 사람을 품지 못하고 쫓아내 미안하고 이런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며 “우리도 이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한국에서 5년 넘게 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한테 영주권을 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남양주/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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