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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계에 ‘3대 선물’ 먼저 줬다?…“비정상의 정상화일뿐”

등록 2015-09-06 20:00수정 2015-09-07 14:59

지난 2013년 12월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앉아 있다. 이날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법적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이를 근로기준법에 입법화하려는 논의가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013년 12월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앉아 있다. 이날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법적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이를 근로기준법에 입법화하려는 논의가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선물론의 허상과 진실

올해 상반기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치며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이슈는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다. 노동계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노사정 협상이 난항을 겪자 재계는 자신들의 협상카드인 통상임금·노동시간·정년연장이라는 ‘3개의 선물’을 일찌감치 노동계에 준 탓에 협상을 그르치게 됐다고 탄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협상 결렬 직후인 4월9일 한 경제지에 실은 ‘국회·법원이 노조에 3종 선물세트 몰아줘 타협 여지 없앴다’는 제목의 칼럼이다. 이 논리는 그 뒤 보수신문과 경제지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시대 비정상의 정상화를 두고 노동계에 준 선물이라는 논리는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한다. 왜 그럴까?

통상임금

통삼임금 범위 넓힌 대법원 판결
‘무노동 무임금’ 법리에 따른 것
노동자들, 추가 근무 하면서도
그동안 훨씬 적은 금액 받아와

노동시간 단축

법원 ‘휴일근로=연장근로’ 판결
3년간 연장근로수당 50% 줘야
관행-법 불일치 바로잡는 건데
선물이라고 하는건 노동자 모욕

정년연장

정년 60살로 의무화하는 건
노인빈곤 해결 위한 증세 안하려
노동자 본인이 책임지라는 것
프랑스선 정년연장 반대 시위

구직급여 확대

박대통령이 확대 발표하자
재계 “협상카드 미리 써버려”
하지만 관련 예산 노동자 절반 부담
이번 조처로 고용보험료 오를듯

■ 그동안 노동계가 손해본 통상임금 통상임금 문제가 노사정 의제가 된 결정적 계기는 2013년 12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은 노동자의 월급명세서에 찍힌 각종 항목 가운데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계산할 때 기초가 되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기본급에 그치지 않고, 정기 상여금이나 식대·교통비·직책수당 등 정기적·고정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모든 수당이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사용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노동자들에게 예전처럼 연장·휴일근로를 시킬 경우 지급해야 할 추가근로수당이 큰 폭으로 느는 탓이다.

반면 노동자들 입장에선 정규 노동시간 이외 추가 노동을 하면서도 2013년 12월 이전까지는 실제 받아야 할 수당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받고 싼값에 자신의 노동을 팔아왔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은 통상임금의 싼 맛에 취해 노동자들한테 연장·휴일근로를 큰 부담 없이 시켰고, 제조업 등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메우기 위해 연장·휴일근로를 하는 관행을 이어왔다. 이는 한국이 세계 최장시간 노동 국가가 된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복잡한 수당 탓에 통상임금 문제가 이처럼 복잡해진 책임이 노동계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 노동자들은 임금협상 때 가능한 한 경직성이 강한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려 한다. 반면 사용자들은 지급해야 할 추가근로수당을 줄이려 각종 수당을 변칙적으로 신설하거나 기존 수당을 올려주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의 핵심 법리가 18년 전에는 노동계를 좌절케 한 대법원의 ‘무노동 무임금’ 판결에서 나왔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95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동계가 ‘복리후생 성격의 임금도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임금의 한 형태인 수당 역시 근로의 대가인 만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법리가 가능한 것이다.

■ 연장근로수당 50% 못 받아온 노동계 통상임금과 함께 상반기 노사정 논의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진 의제가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사용자가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 나선 배경에도 성남시 청소업체를 비롯한 상당수 사업장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자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 때 50%의 가산수당을 주고 휴일근로 때도 50%의 가산수당을 주도록 하는데, 지금도 대부분의 회사들은 노동자의 휴일근로 때 연장근로수당은 주지 않은 채 휴일근로수당 50%만 준다. 토·일요일 등 휴일에 하는 근로는 연장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 40시간제에서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에 토·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더한 68시간이 주당 최대 근로시간으로 적용돼 왔다. 이 역시 한국이 최장시간 노동 국가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잇단 소송에 법원은 휴일근로도 연장근로로 봐야 한다며 휴일근로수당 50%에 연장근로수당 50%를 더해 주라고 판결을 하고 있다. 이는 연장근로든 휴일근로든 1주일에 12시간 이상의 추가근로를 시킬 수 없으니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이라는 얘기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도 하급심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처럼 사회적 합의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사용자들은 임금채권 소멸시효인 3년 동안 주지 않은 연장근로수당 50%를 모두 줘야 할 처지다.

관련 소송을 맡고 있는 김건우 변호사는 “대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는 순간 입법은 물 건너가고 판결대로 사용자 쪽이 연장근로수당을 당장 지급해야 할 처지”라며 “지금의 노사정 논의는 관행과 법률의 불일치를 바로잡는 과정인데, 이를 두고 ‘근로자에게 주는 일방적인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 정년연장이 오직 노동자를 위한 것? 내년부터 시행되는 60살 정년 의무화도 논란거리다. 현재 통상적으로 58살인 정년을 2년 늘린 게 과연 노동자한테 일방적으로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애초 정년 연장이 논의된 사회적 배경은 평균 수명이 늘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함께 늘어난데다, 국민연금 최초 수급연령이 60살에서 65살로 단계적으로 늘어나는 상황 등이다. 단순화하면, 나랏돈으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당사자들이 일을 해서 각자도생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한국비교노동법학회에 의뢰한 ‘60세 정년제와 임금체계 개편 관련 법적 쟁점사항 연구’를 보면, 학회는 정년의무화 제도의 신설 배경으로 △국민연금제도의 높은 수급연령과 낮은 지급수준은 개선될 전망이 불투명하고 △정년퇴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안정제도는 근원적 한계가 있으며 △약정정년제도를 법정정년제도로 바꾸어 정년을 높이는 것이 노후생활안정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노동계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이 아니라 정년 연장의 국가적 필요성이 더 컸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선 국가 차원의 정년 연장 추진이 노동자 반대시위의 소재가 된다. 연금수급 시작 시점을 늦추고 정년을 늘리는 데 대한 저항감이 크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60살인 정년을 62살로 늘리기로 해 대규모 반대시위가 일었다. 결국 2013년 집권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반대여론을 받아들여 정년을 다시 60살로 줄여야 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중고령 노동자의 정년 연장은 시대적 과제이자 국가 존립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한국 노동자들이 서구 노동자처럼 나이가 들면 일을 안하겠다고 할 수도 있으나 착하게도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정년 연장을 비롯한 3대 의제를 노동자에게 주는 선물이나 혜택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짚었다.

■ 구직급여 확대는 여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 경제계는 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때 실업(구직)급여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노사정위에서 노동계와 의제 교환 과정에서 써야 할 카드를 “미리 써버렸다”며 아쉬워한다. 박 대통령은 실직자가 일을 그만두는 당시 평균임금(통상임금에 추가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더한 임금총액의 평균)의 50%를 주는 구직급여를 평균임금의 60%로 올리고 현행 최장 240일인 지급기간도 270일로 30일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 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려면 9월10일까지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한국노총 압박의 ‘지렛대’로 들이대기까지 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정부가 세금을 거둬 주는 재정지출 항목이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노동자 임금의 1.3%를 절반씩 나눠 내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된다. 이번 조처로 고용보험료 인상이 예상된다. 증세 등 정부 부담은 없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얘기한 구직급여 인상 수준은 여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위원장은 “아직 구직도 하지 못한 청년이나 영세 자영업자에게 획기적인 제도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말한 방안으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저소득 노동자의 국민연금·고용보험료 절반을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강화하고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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