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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자 과반 동의 못얻고도…서울대병원 ‘임금피크제’ 강행

등록 2015-10-29 20:09

취업규칙 변경 ‘위법’ 논란
서울대병원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하고 있지만, 형식적이나마 직원 과반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강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에서는 지난 9월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노동계가 가장 크게 반대한 정부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 완화 방침이 일터에서 이미 적용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병원은 2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한 취업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방사선사를 비롯해 사무직, 기능직 등 노동자 6045명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임금은 58살 때 정점에 올라 59살 땐 20%, 60살 땐 30%를 각각 깎는 구조다. 서울대병원은 이들과 다른 취업규칙을 적용받고 정년이 65살인 의사 560여명한테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간호사·사무직 등 6045명에 적용”
이사회, 개정안 서둘러 통과시켜

적용 대상자중 찬성표 28% 불구
병원 “정년연장돼 불이익 아니다”

정부압박에 지침 확정전 밀어붙여
노동계 “변경요건 완화 첫 신호탄”

하지만 이날 서울대병원의 결정을 놓고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했는데도 취업규칙을 바꾼 것은 ‘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한테 불리한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바꿀 때(불이익 변경)는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쪽은 지난 20~27일 취업규칙 적용 대상 6045명한테 찬반 여부를 투표로 물었으나, 28.6%의 노동자만 찬성했다.

병원 쪽은 이에 대해 “임금피크제 도입은 불이익 변경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 동의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정진호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은 “내년에 정년 2년 연장이 전제된 상황에서 20~30% 임금 삭감은 손해가 아니며, 근로연수 제도 도입 등으로 병원이 근로자들한테 손해가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의 박경득 분회장은 “병원이 처음에 임금피크제를 설명할 때 ‘불이익 변경이라 여러분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심지어 관리자한테서 투표에 참여하라는 문자메시지를 24통이나 받은 조합원도 있는데, 이제 와서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병원 쪽이 위법 논란에도 서둘러 취업규칙 개정안을 통과시킨 건 정부의 압박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전체 316개 공공기관 가운데 서울대병원 같은 기타공공기관은 10월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조만간 결정될 임금상승률을 다 보장하고, 11~12월 도입 땐 75%, 연내 도입하지 않으면 50%만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진호 실장은 “그 스케줄에 맞추지 못하면 전 직원한테 굉장히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정열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은 “병원 쪽이 바뀐 취업규칙을 지방청에 신고해오면 불이익 변경인지 여부부터 검토하겠다”며 “전체 316개 공공기관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지난 23일 현재 211곳으로 10월 안에 최대 32곳이 추가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서울대병원의 이번 결정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조만간 관련 지침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노동계는 회사가 과반의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갖추면 바뀐 취업규칙의 법률적 효력이 있다는 쪽으로 정부가 지침을 만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정부의 지침은 초법적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큰데, 심지어 정부의 지침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공공기관에서부터 노동자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종휘 노현웅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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