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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임금피크제 안하면 연구소 없앤다니 어쩔 수 없이 찬성할 수밖에…”

등록 2015-11-01 19:45수정 2015-11-01 22:52

공공기관 ‘연내 도입’ 정부압박에
국책연구기관, 여론 재수렴
한달만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곳곳서 불법적 행태 늘어
 에너지 관련 국책 연구기관인 ㄱ연구소는 금요일인 지난달 30일 퇴근 한시간 전인 오후 5시께부터 갑자기 직원들에게 임금피크제 도입 관련 취업규칙 변경안에 대한 찬성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서명을 받기 시작한지 1시간30분 만에 취업규칙 적용대상 직원 254명 가운데 170명 이상이 찬성 서명을 했다. 이 연구소는 이미 9월말 임금피크제 도입안을 투표에 붙인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98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임금피크제가 통과되려면 과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한달 만에 찬성 의견이 급작스레 많아진 것은 이날 오후까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미래창조과학부에 있는 연구소 담당 팀이 해체된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는 곧 연구소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연구소 노조의 이아무개 지부장은 “조직이 해체된다는 소식에 많은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며 “조직 존폐와 아무런 상관없는 임금피크제 도입 때문에 직원들이 서둘러 동의하는 모습이 우습고 부끄럽고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아무개 연구소장은 “연구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정부가 31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압박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법적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ㄱ연구소처럼 이미 노동자들이 취업규칙 개정에 반대했는데도 다시 의견수렴에 나서거나 개별적으로 서명을 받으면서 사용자 쪽이 찬성을 강요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판례는 노동자의 자율적인 의사표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집단적인 의견수렴을 통한 취업규칙 개정만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달 20~27일 이루어진 노동자 투표에서 28.6%만 찬성해 임금피크제 도입이 부결됐음에도,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취업규칙 변경안을 통과시킨 서울대병원도 투표 과정에서 탈법적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 노조 쪽 주장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은 “수납 업무를 담당하는 한 팀장이 27일 오전 11시께 올해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직원한테 투표를 강요하다 노조 간부한테 발각되자 이 여직원을 데리고 나가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또 직원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환자를 촬영하고 있는데도 병원관리자가 전화를 해서 투표를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주장했다. 박경득 분회장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투표를 강행하고도 과반수 찬성 확보에 실패하자 병원이 기획재정부가 못박은 시한에 쫓겨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개정안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재정부는 기타 공공기관이 10월 말까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조만간 결정될 내년치 임금상승률을 3/4으로 깎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북대병원도 애초 지난달 27일까지이던 서명 작업을 29일로 연기하고 병원 관리자가 직원들을 개별 접촉해 퇴근시간을 넘겨서까지 서명을 요구했다. 이에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지난달 30일 병원 쪽은 직원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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