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 중이던 서울 견지동 조계사를 나와 경찰에 자두출두 하기로 한 10일 오전 조계사에 경찰력이 추가 배치되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 출석했습니다. 덕분에 경찰이 종교시설인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습니다. 경찰이 보여준 그동안의 인내, 중재를 위해 노력한 조계종 화쟁위원회, 또 어렵게 경찰 출석을 결정한 한상균 위원장 모두의 고민과 결단 덕분입니다. 과정이 어찌됐건 모두 고생하셨단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한상균 위원장도 기왕 경찰에 출석한 만큼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경찰도 무리한 추가 법집행을 피하고 객관적으로 수사할 것을 당부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와 관련해 그간 경찰력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지난 한달여간 우리 사회가 이 문제로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최소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출석할 때마다 이런 갈등이 벌어져선 안 됩니다.
체포영장은 4, 5월 집회때 벌어진 일 때문
한 위원장 ‘6월 출석’ 밝혔는데 영장 강행
11월 민중대회 무리하게 연결 소요죄 검토
정부 노동법 개정 반대 노동계 압박용인듯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경찰에 출두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며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표면적으로 보면, 한상균 위원장이 경찰 출석을 피해왔고 경찰은 적법하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의 체포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발표 내용으로는 한 위원장이 모든 문제의 근간입니다. 조계사 일부 신도들이 “당당하면 경찰에 출석하라”며 한 위원장을 압박하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건을 좀 자세히 뜯어보면 경찰이 과연 한 위원장 체포와 관련해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는지 의문이 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경찰이 조금만 한 위원장 쪽과 대화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회적 갈등이 커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 하나가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영장 발부 시점입니다.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영장은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대회 개최 때문에 발부된 것이 아닙니다. 한 위원장 쪽 변호인과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 위원장의 체포영장은 올해 4월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 5월1일 노동절 집회 등과 관련해 6월23일 발부된 것입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했으니 경찰로서는 집회 주최자 중 하나인 민주노총 위원장 조사가 필요했을 겁니다.
경찰은 한 위원장에게 출석요구서를 4월 이후 8차례 정도 보냈습니다. 만약 한 위원장이 이것을 계속 받고도 무시했다면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을 뭐라 할 수 없지요. 하지만 한 위원장은 변호사를 통해 ‘6월 안에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고 경찰에 밝혔습니다. 경찰도 이 점은 인정합니다.
법원은 6월 초 경찰이 신청한 체포영장을 1차 기각하면서 “변호사를 통해 출석 가능한 날을 밝힌 점 등에 비춰 출석에 불응했다고 보기 어렵고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한 위원장이 약속한 6월 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법원의 체포영장 기각 며칠 만에 다시 신청했고, 결국 체포영장을 발부받습니다. 7월15일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오창배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왜 한 위원장의 출석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것인지 물어보았는데, “정당한 출석 불응의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만 본 것이다. (한 위원장이) 출석하겠다는 그 말만 듣고 판단할 순 없는 것 아니냐”는 정도의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위원장 입장에서는 7월 총파업 준비로 무척 바쁘고 또 국회에는 노동법 개정안이 곧 상정될 예정인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인도 경찰 출석 시점을 조율할 권리가 있는데, 70만 노동자 조직의 대표인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도 당연히 이런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임 민주노총 위원장들은 경찰과 상의해 퇴임 이후 자신의 재임 때 벌어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받은 사례들도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위원장에게는 이러한 관행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한 위원장은 그래서 6월 말부터 수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검경이 조금만 더 인내하고 한 위원장 쪽과 출석시점을 조율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도피할 일도 없고, 또 법원의 재판에도 출석을 못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경찰 역시 6월에 끝냈을 조사를 12월 현재까지 미루게 될 일은 없었겠지요. 경찰이 한 위원장의 약속을 무시한 채 계속 출석요구서만 8차례 보낸 이유가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한 근거자료를 쌓으려던 것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를 나와 남대문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또 한상균 위원장에게 적용된 혐의 내용을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공권력을 총동원해 체포에 나설만큼의 중범죄 혐의였는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한 위원장의 체포영장에 적용된 혐의는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입니다. 한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관련 집회로 지난달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받은 송경동 시인의 경우 100만원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아마 한 위원장도 비슷한 수준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는 5월 국회 앞에서 열린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집회 때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한 위원장이 경찰관과 부딪힌 사건 때문에 적용된 혐의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한 위원장은 경찰과 단순히 몸을 부딪힌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찰 역시 이 부분은 ‘경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최근 언론에 발표하고 있는 소요죄 적용 검토 등은 지난 6월 발부된 체포영장 때의 사유가 아니라 11월 민중총궐기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이 한상균 위원장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만한 중범죄를 저지른 채 경찰에 출석도 안하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 10일 집행된 체포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경찰 출석 요구서가 발부된 정도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달이 무척 중요한 시기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가 주문한 노동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습니다. 파견직 허용 업종의 확대, 비정규직 사용 기한 4년으로 연장, 취업규칙 개정 조건 완화 등이 포함된 개정안입니다. 노동계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하면 비정규직이 지금보다 더 늘고 해고 요건이 완화되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어 총파업까지 고민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이런 때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은 노동계로서는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중요 이해당사자인 노동계가 배제된 채 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국회에서 노동법을 개정해 버리면 그 후유증은 온 국민이 떠안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검경이 한상균 위원장 쪽과 좀더 소통하지 않고 무조건 체포에만 열을 올린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검경의 목적이 한 위원장 조사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총 위원장 구금 자체에 있었던 것인지 노동계는 정부에 묻고 있습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관련기사]▶한상균 버틸까 나갈까…9일밤 민주노총 ‘번뇌의 4시간’▶도법 스님 “한상균 절망 품고 들어와…마지막 나흘밤 꼬박 새워 이야기” ▶한상균 체포 이후…노동개편 파국 치닫는 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