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관리·간병·육아 노동자 30만명
“일하러 오지 마세요” 당일 취소에
매뉴얼 없어 마구잡이 일시켜 피해
정부, 작년 대책 발표 뒤 입법 뒷전
관리사협, 계약서 작성 캠페인 확대
“일하러 오지 마세요” 당일 취소에
매뉴얼 없어 마구잡이 일시켜 피해
정부, 작년 대책 발표 뒤 입법 뒷전
관리사협, 계약서 작성 캠페인 확대
“단수됐으니 오늘 오시면 안돼요. 목요일에 오세요.” 또 ‘당일 취소’였다. 방문 청소·세탁 등의 일을 하는 ‘가정관리사’ 허아무개(59)씨는 일주일에 4~5가구를 방문해 시급 1만원을 받고 4시간씩 일한다. “일정이 바뀔 순 있지만 하루 전에만 이야길 해주면 좋을 텐데 남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으니 아쉽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다. “기본 청소·빨래만 제대로 한숨도 못 쉴 정도로 4시간이 빠듯하거든요. 그런데 왜 냉장고 청소 등 다른 일까지 안했냐며 항의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정관리·간병·육아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가사노동자가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계약서나 이용지침 등 최소한의 원칙도 없이 일하고 있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협약국들에게 가사노동자에게 노동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고한 바 있지만 국내에서 가사노동은 근로기준법 ‘제외’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초 가사노동자 보호대책을 발표했지만, 이후 파견법 개정 등 다른 법안들만 챙기느라 관련 입법을 뒷전으로 미뤘다. 고용부 관계자는 2일 “가칭 ‘가사서비스 이용 및 종사가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이미 만들었으나 지난해 ‘노동개혁’ 국면에서 꺼내들기 어중간해 전문가와 관련 단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만 거친 상태”라며 “오는 5월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 “정부 인증을 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이용자는 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2015년6월까지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동안, 지난달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을 배제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과 함께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에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보장하고 4대보험을 적용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가사노동 단체들은 우선 가사노동자와 이용자 사이의 ‘이용계약서’ 작성이 권익 보장의 첫 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직업소개소에서 고객(이용자)을 소개받아 이용자로부터 직접 업무 내용을 지시받는 가정관리사들은 누구와도 고용 계약을 맺지 않는다.
500여명의 가정관리사가 모인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2014년 11월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함께 ‘가사노동 업무 매뉴얼’을 개발하고 지난해 9~11월 ‘이용계약서’ 작성 사업을 시범실시했다. 가정관리사들이 4시간 안에 수행하는 일을 청소준비·세탁·바닥청소·주방·화장실 등 7가지 영역, 70가지 세부 업무로 표준화했다. 손걸레 사용은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밀대걸레를 사용한다거나,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는 등 가정관리사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들도 담겼다.
윤현미 전국가정관리사협회장은 “예전에는 가정관리사가 알아서 일하고, 이용자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약서에 고객의 의무와 책임, 관리사의 의무와 책임, 일의 범위가 들어가 있는데 젊은 고객들은 업무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좋다는 반응이 많다”고 설명했다. 협회 쪽은 올해 이용계약서 작성을 확대하는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엄지원 전종휘 기자 umkija@hani.co.kr
가사노동자 노동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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