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원청 노조는 물론 하청업체 노조까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사찰하고 노조활동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18일 현대중공업에서 2011년까지 노무관리를 하는 운영지원과장으로 일하다 퇴사한 이아무개씨의 노조 사찰 폭로 내용이 담긴 동영상과 이씨가 과장으로 일하던 때 작성한 수첩 등을 공개했다. 이씨는 동영상에서 “회사에 (원청 조합원) 성향을 아르(R=Red), 와이(Y=Yellow), 에이치(W=White)로 나눈 블랙리스트가 있다. 아르는 빨간색, 와이는 중간성향, 에이치는 우리편이라는 뜻이다. 아르가 많으면 심각해지기 때문에 (운영지원과 직원이) 이들을 언제까지 와이로 바꿔야하는지 보고서도 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노조 내부 정파 가운데 강성인) 전노회, 공대위, 청년노동자 같은 조직들을 관리를 했다. 이들이 대의원으로 출마하면 안 됐다. 대의원 출마하려면 일정 수 이상 조합원의 (동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운영지원과가 나서 사인을 하지 못 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사인하는 사람은 박살을 낸다”고 폭로했다. 이씨가 재직 당시 운영지원과 회의 내용을 적은 수첩 내용을 보면 “대의원 서명 요청 가능-못 하도록 할 것, 박○○과 절친한 사이-접근·참석 차단” 등이 적혀 있다.
이씨는 강성 조합원들을 미행하고 사찰했다고도 밝혔다. 이씨는 “아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필터링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전노회, 청년노동자, 공대위 쪽 사람들이 출마하면 그들이 집에 가서 씻으러 (욕실에) 갈 때까지 관리했다. 놓치면 큰 일 난다. 그가 오늘 어디 가서 누굴 만나 소주를 마셨는지까지 다 보고한다. 심지어 강성 조합원의 관물함까지 뒤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노회가 처음엔 단식하고 삭발하고 초강성이었으나, 10∼15년씩 계속 압력을 가하다보니 조금씩 돌아섰다”고 말했다.
회사가 노조활동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상 불법으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씨는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도 관리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하청의 불순세력, 투쟁 경험자 등의 명단을 관리한다. 어떤 업체든지 (현대중공업 쪽에) 통지를 한다. 하청 모집인원을 (각 부에 딸린 운영지원과를 통합 관리하는) 운영지원부에서 확인한다. 얘는 된다 안 된다 구분한다. 특정 부서 운영지원과가 이를 걸러내지 못 하고 하청노동자 명단을 올렸는데 운영지원부에서 발견해내면 문책을 당한다”고 했다.
이씨가 공개한 수첩에도 “1.하청노조-현중 협력사 이동하는 사람 접촉. 2.하청노조 발생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3.협력사 담당과장 철저한 관리 필요” 등과 같은 내용들이 적혀 있다. 또 “협력사 말 많은 사람 빨리 정리해야 한다”거나 “심각하다-계속 이렇게 가면 하청노조 (결성)된다”는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이씨는 “지금도 이런 식의 (원-하청업체간) 회의를 수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1년 현대중공업을 퇴직한 뒤 지난 1월까지 ㅇ하청업체 대표로 재직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의 하창민 지회장은 “하청 노조가 2003년 설립된 이후 엄청난 탄압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현대중공업이 사용자로서 악랄하게 노무관리를 해 온 사실이 실제 노무관리를 한 사람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수첩은 5년 전에 개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만약 우리한테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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