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도 노조’ 주목되는 판결
금속노조, 유성노조 무효소송
법원 “회사가 조직하고 운용해
노조 자주성·독립성 확보 못해”
민주노총 “노조파괴 행위 확인”
금속노조, 유성노조 무효소송
법원 “회사가 조직하고 운용해
노조 자주성·독립성 확보 못해”
민주노총 “노조파괴 행위 확인”
회사가 설립·운영을 주도한 노조는 자주성이 없어 무효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2011년 복수노조 설립 이후 회사가 다른 노조를 설립해 기존 노조를 고립·무력화하던 행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는 1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유성기업과 복수노조로 설립된 유성노조(기업노조)를 상대로 낸 노조설립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유성노조는 설립 자체가 회사의 주도로 이뤄졌고 이후 조합원 확보나 운영도 모두 회사 계획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뤄졌다”며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노동조합법은 노조를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휘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규정한다. ‘자주적’이란 노조가 사용자나 외부세력의 간섭이나 영향으로부터 독립해 조직되고 운영돼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은 2011년 과반수 노동자가 가입해 있던 금속노조가 ‘주간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파업하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새로운 기업노조 설립을 계획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보낸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를 보면, 회사 대응 전략으로 “온전·합리적인 제2노조 출범”이라는 내용이, 핵심과제로 “건전한 제2노조 육성”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후 창조컨설팅과 회사는 기업노조 설립을 위한 전략회의를 수차례 열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창조컨설팅의 자문에 따라 유성노조 설립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했고 2011년 7월 노조 설립 총회에서 그대로 이행됐다”고 판단했다. 기업노조 설립 이후에도 △개별 면담해 노조 가입 종용 △‘상생의 길’ 노보 발간 △온라인 노조 가입 허용 등 창조컨설팅의 전략을 회사와 기업노조가 그대로 따랐다. 재판부는 “회사가 그 설립부터 설립 이후 안정화, 세력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주도적으로 개입한 노조는 자주적·독립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 설립 무효가 확정되면 단체협약도 무효가 돼 교섭단체는 금속노조 유성지회로 바뀐다.
유성기업 쪽은 “검찰이 금속노조가 고소한 회사의 노죄 파괴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는데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성노조가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회사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법과 질서를 유리하면서 벌인 끔찍한 범죄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환영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부터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노조 파업과 회사 쪽의 직장폐쇄에 이어 회사 쪽이 기업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조합원을 집단적으로 징계해고하는 과정에서 고소·고발이 지속됐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