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공기관에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한편 “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사실상 ‘쉬운 해고’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한국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 오는 29일 19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시즌1’을 마감합니다. 정부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파견법 등 노동5법이 자동 폐기됩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포기 뜻을 밝힌 기간제법을 뺀 나머지 4개 법안은 30일 시작하는 20대 국회에서 조만간 다시 발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하는 가짜 노동개혁 대신 진짜 노동개혁을 고민하자고 제안합니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 비준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억압적인 국내 법체계와 제도를 보편적인 국제 수준 정도로는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한국은 ILO의 전체 189개 협약 중 기구가 반드시 비준할 것을 권고하는 8개 핵심 협약 가운데 4개를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결사의 자유 관련 2개 협약(87호, 98호)과 강제노동 관련 2개 협약(29호, 105호)입니다. 차별금지(100호, 111호), 아동노동 금지(138호, 182호) 관련 협약 4개만 비준했습니다. 19일 국제노동기구 누리집을 보면,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관련 4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187개 가입국 가운데 모두 7개입니다. 그 나라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브루나이 다루살람, 마셜군도, 통가, 팔라우, 투발루입니다. 한국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이 4개 협약을 비준하지 못할까요? 아니 안 할까요? 그 핵심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해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평화적 파업임에도 노동자를 형사처벌하는 나라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오른쪽 넷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기자회견 열어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혁 독주에 대해 강력한 비판과 함께 ‘중대 결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현대 사회에서 노동이란 노동자가 사용자한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일급, 주급, 월급, 연봉)을 받는 당사자 간의 사적 계약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파업은 그 계약과 달리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그만큼 임금을 받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쟁의행위와 관련해 사적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는 매우 드문 나라입니다.
문제는 형법 314조 업무방해 조항입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로 다른 이의 신용을 훼손하거나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사안은 법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이 법을 노동자의 파업에 마구잡이로 적용해 기소하는 검찰과 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법원 등 사법절차의 문제에 닿아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겠습니다. 전국철도노조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반대하며 파업을 했는데, 철도노조는 파업에 앞서 “파업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철도공사가 노조의 파업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평화롭게 진행된 철도노조의 파업이 철도공사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은 “근로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현행범 외에는 이 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아니한다”고 해 파업을 이유로 형사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형법 조항을 악용해 파업을 불법화하고 노동자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의지는 명확합니다.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국제 기준으로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상국가가 되려면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 혐의를 파업에 적용할 때 매우 엄격한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이런 현실은 국제노동기구의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임과 동시에 한국이 가입하지 않은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도 위반될 소지가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여러 이유로 파업 참여를 형사처벌하는 법 제도와 관행이 사실상 파업권을 제한해 결과적으로는 노동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하고싶지 않은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다스리는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 소수의견으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면) 근로자들로 하여금 형사처벌의 위협 하에 노동에 임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제시됩니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단결권 관련 협약 비준시 업무방해죄 문제는 전문가위원회나 기준적용위원회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라고 말합니다.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사법 관행을 고치기 전엔 한국이 4개의 핵심협약에 가입하기 어렵습니다.
노동법 체계의 전근대성은 사실 형법과 업무방해죄 문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노조법의 여러 조항도 손봐야 합니다. △노조가 주도하지 않은 쟁의행위에 참여하는 경우 △쟁의행위가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 업무를 보려는 이를 방해하는 경우 △쟁의행위가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경우 △파업기간 중 받지 못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또 다른 파업을 하는 경우 등도 현재 형사처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2. 노조원 가입자격을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임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법외노조 후속조치에 항의하며 ‘부당 후속조치 철회’와 ‘참교육 전교조 사수’ 등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잘 알려진 대로, 조합원 10만명 가량의 전국공무원노조와 5만명이 가입한 전국교직원노조는 현재 법외노조입니다. 어느 노조가 법외노조가 됐다는 것은 노조법상 노조의 여러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이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현직 노동자가 아니면 조합원 가입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당 법은 해고된 노동자의 조합원 가입 자격에 대해 부당해고 문제를 다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만 인정합니다. 행정소송 단계로 나아가면 해직자는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킵니다. 두 노조가 법외노조로 밀려난 까닭도 불과 10여명 안팎의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내부 규약과 관행 때문입니다. 이러니 이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나중에 사법적으로 어떻게 결론나는지를 떠나 일단 사건을 행정법원으로 넘기는 순간 노조 간부들의 조합원 가입 자격은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이는 “조합원 가입자격은 해당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결사의 자유 협약에 배치됩니다. 이는 노동 선진국의 상황과도 크게 배치됩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독일 금속노조의 경우 조합원 넷 중 한 명이 퇴직자입니다. 산업별 노조의 경우 해직자 가입을 허용하면서 기업별 노조의 조합원한테는 같은 권리를 주지 않는 것도 차별적 요소입니다.
5급 이상 공무원을 비롯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처럼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진 중앙행정부처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속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소방관이나 교정분야 공무원 등까지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전국 90만여명의 공무원 가운데 차 떼고 포 떼고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갖는 이는 30만여명에 불과하고, 6급 이하 공무원 가운데 70%는 결사의 자유가 부정됩니다.
해당 법 조항을 손대지 않고선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기 어렵습니다.
3. 21세기에 아직도 강제노동이 남아 있는 나라
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10만명이 모이는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가 열린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반대하며 집회를 하는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국이 ‘강제노동국가’라는 이상한 오명을 쓰게 된 것은 병역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협약은 개인이 원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전투 부문에 종사하는 군인한테는 예외를 둡니다. 그런데 국내 공익근무요원은 전투 부문이 아님에도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등급을 결정해 분류하면 복무해야 합니다. 공중보건의사, 공익법무관, 징병검사전담의사, 산업기능요원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 국방부가 최근 현역 입영자 감소를 이유로 오는 2023년까지 각종 병역특례 제도를 없애기로 한 결정이 주목됩니다. 국제 기준으로 보자면 강제 노동의 폐지에 한 걸음 다가선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입니다. 이공계 대학생 등이 특례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만, 그 문제는 다른 제도적 해결 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강제노동 금지협약 비준은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한국으로서는 더 시급한 사안입니다. 이승욱 교수는 “일본은 1929년에 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비준한 뒤 1932년 상하이에서 위안부 시설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위안부도 국제노동기구 관점에선 강제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강제노동금지 협약을 위반한 일본의 책임을 물으면서 우리조차도 비준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현실이 일본에 어떤 형태의 면죄부가 될 순 없지만, 한국 사회 내부의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강제노동 금지 협약 가입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한국 정부는 국내법과 국제 기준의 차이가 커 4대 핵심 협약을 비준하기 어렵다는 동어반복에 빠져 있다. 정부가 비준을 통해 국내법을 국제 기준에 맞춰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만날 얘기하면서도 막상 대화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표성을 축소하는 법 제도를 유지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 논의를 통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 ‘진짜 노동개혁’의 한 축이라고 해도 무리한 것은 아닐 테지요.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