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돈 많이 된다고 일부러 물량팀 하는 사람도 제법 많아요. 불리하면 고용보험에 의지하고 유리하면 물량팀인가요?”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물량팀’(재하청 계약직 노동자) 절반가량은 실직을 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보도(<한겨레> 23일치 1·4면)한 뒤 ‘알고도 물량팀을 선택한 것’이라거나 ‘고용보험이 없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조선업체 물량팀 하청노동자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불안정한 고용을 감수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 조선소가 한둘 문을 닫으면서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대형 조선소로 몰려들었다. 해양플랜트 분야로 뛰어든 대형 조선소는 하청노동자를 수만명 늘렸고 원·하청 비율은 1 대 9로 치솟았다.
하청업체는 대형 조선소가 요구하는 짧은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재하청해야 했다. 그러나 공식 계약이 대부분 아니다. 대형 조선소가 재하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3개월 계약직 노동자가 몰려 있는 물량팀이 한두 마디 말로 1차 하청업체의 일을 따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 현장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철야를 해서라도 일을 빨리 끝내버린다. ‘5분 대기조’로서 “시급 1000원을 더 받기 위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정규직이 하기 싫은 일, 힘든 일, 더러운 일”을 했다. 그런데 4대 사회보험(고용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에 가입하려면, 사용자의 부담금까지 떠안으라고 요구받았다고 한 물량팀 하청노동자가 말했다.
실업은 노동자가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조선업처럼 세계 경기와 유가 변동으로 불황이 생기고 누군가는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이 존재하는 이유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임금노동자가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법 제13조를 보면, ‘피보험자(노동자)는 고용된 날에 피보험 자격을 얻는다’고, 제17조는 ‘피보험자(노동자)가 언제든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피보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사용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임금노동자는 고용보험 피보험자로 간주하며, 실업급여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지난 18개월간 180일 이상 임금노동했다는 사실을 노동자가 급여명세서나 급여통장 등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면 고용보험의 피보험 자격을 소급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한 노무사는 “4대 보험은 의무가입이기에 근로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보험료도 소급해서 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다가 일자리를 잃은 하청노동자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원·하청과 재하청이 얽히고설켜 고용관계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은데다 그 증빙서류를 스스로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월 12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겠다고 노무사에게 사건을 맡기기도 어렵다. 사용자가 일부 임금을 떼먹고 도망가도 그냥 포기하는 게 노동자의 현실이다. 불황의 시대에, 법과 현실 사이에 새로운 징검다리가 필요해 보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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