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공개한 녹취 파일
경북 칠곡에서 한 50대 남성이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AS)를 위해 찾아온 수리 기사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들고 폭행 위협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막말 세례와 폭행 협박을 받은 이 수리 기사는 “삶에 회의를 느꼈다”고 울분을 토하며 고객을 고소했으나, 하청업체는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한 모양새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2일 삼성전자서비스 칠곡센터 앞으로 접수된 TV 수리 요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리 기사가 야구방망이를 든 남성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히며 당시 대화를 녹음한 5분 40초짜리 녹취 파일을 5일 공개했다.
녹취 파일과 지회 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1일 오후 칠곡의 한 가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TV 고장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상담 쪽 실수로 수리 기사에게 신고 접수 전달이 늦었고, 수리 기사는 약속한 시간인 2일 오전 9시보다 늦은 오전 10시30분께 이 가정에 도착했다. 그러자 고장 신고를 접수한 남성은 도착 직후부터 수리 기사에게 화를 냈다. 게다가 수리 기사가 TV 작동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분 정도 TV를 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 남성은 거친 말로 작업을 독촉했다.
끝내 이상 현상을 확인하지 못한 수리 기사가 “액정 고장인 것 같다”고 설명하자, 이 남성은 “액정이 왜 고장 나느냐. 가만히 있는 액정이 왜 고장 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수리 기사가 “오래 사용하거나 많이 사용하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자, 이 남성은 TV 사용 연한 등을 따져 물었고, 이후 야구방망이를 들고 와 욕설을 하면서 “TV를 부수겠다”,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말로 수리 기사를 여러 차례 위협했다. 수리 기사는 이 남성과 함께 있던 여성의 만류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지회는 수리 기사가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당일 오후 한 건의 수리만 처리하고 일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고 전했다. 해당 수리 기사는 “공황 상태였고 주말을 보내면서도 종일 멍하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이 계속되고 정말 사는 게 회의를 느낄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회는 “수리 기사들의 과도한 감정노동은 여러 차례 회자되어 왔지만, 직접 방문으로 고객을 대면하는 외근 수리 기사가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조치가 없다. 전에도 고객이 음식을 집어 던지거나 멱살을 잡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쪽은 협박을 당한 기사를 보호하기보다 사건을 덮는데 치중하고 있다. 지회는 하청업체 쪽에 수리 업무를 맡기는 삼성전자서비스 칠곡센터 외근 팀장이 ‘수리 접수가 안 되어 고객이 화난 상태에서 기사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좋게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히는가 하면, 수리 기사가 지난 4일 대구 강북경찰서에 이 남성을 고소하자 고소 취하를 독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당 칠곡센터 외근 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고소 취하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고객과 좋게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지회는 “상담에서부터 제품에 대한 불만까지 수리 기사에게 떠넘겨지는 상황이지만, 삼성전자는 수리 기사가 자신의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모든 부담은 수리 기사에게 집중시킨다. 이런 상황에도 사용자인 삼성전자서비스는 실적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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