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노-사위원들 ‘속내 토로’
내가 최저임금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이유?
내가 최저임금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이유?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7.3%(440원) 오른 6470원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비정규·청년·소상공인을 대표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한 일부 노동자위원 및 사용자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종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노동자위원),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노동자위원),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사용자위원) 등을 만나, 2년 연속 최저임금 회의장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어봤다. 이남신·김민수 위원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김대준 위원은 서초구 방배동 카페에서 만났다. 최저임금위는 노동자·사용자·공익 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이 해마다 다음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이들은 지난해부터 당사자 대표로 2년간 참여했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역대 가장 많은 전원회의(14차례)를 열 정도로 진통이 심했다. 몇 차례씩 수정안을 내던 것과 달리, 올해는 노사가 ‘시급 1만원’과 ‘동결’(6030원)을 고수했다. 왜 수정안을 내지 않고 퇴장했나?
이남신 수정안을 내느냐, 내지 않느냐를 두고 노동자위원 9명은 치열하게 토론했다. 지난해에 사용자위원은 몇십원씩 찔끔찔끔 올리고, 공익위원은 노사 수정안과 상관없이 심의 촉진 구간을 결정했다. 노동자위원이 수정안을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숫자놀이에 매몰되기보다는 최저임금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느냐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결론냈다.
김민수 공익위원이 제12차 전원회의에서 심의 촉진 구간(6253~6838원, 3.7~13.4%)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나는 노동계가 수정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심의 촉진 구간이 나온 뒤 공익위원이 ‘죄수의 딜레마’를 활용하는 것을 보며 모멸감을 느꼈다. 공익위원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자체 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내 마음의 숫자를 맞혀보라”고 노사 양쪽에 강요했다.
김대준 정부의 최저임금 목표는 중위소득(임금총액순으로 정렬하면 한가운데 위치하는 액수)의 50%인데 이미 이 수준을 달성했다. 이제는 물가상승률(2.9%)만 매년 반영하면 된다는 게 소상공인의 입장이다. 이 입장을 고집하면 최저임금의 룰이 깨지니까 발언을 자제하고 퇴장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지급할 당사자인 소상공인 입장은 결국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월 135만원)은 비혼 단신노동자 생계비(167만)에도 못 미친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하지 않나?
김대준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노동생산성도 낮은 상황에서 소상공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최저임금만 올려댈 수 없다. 이미 자영업자의 폐업이 줄을 잇는다. 최저임금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자영업자 수익도 커진다고 주장하는데, 아랫돌 빼서 윗돌 쌓자는 얘기다. 스위스처럼 생활임금을 몇백만원씩 쏟아붓지 않는 한 소득주도 경제성장은 현실성이 없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문제는 사회복지제도와 결합해 풀어야 한다.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저소득층 소득지원책을 정부가 적극 활용해야 한다.
김민수 지난 4·13 총선 때 최저임금이 이슈로 떠올랐는데, 역설적으로 정치권이 사회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이 별로 없구나 생각했다. 최저임금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엑스칼리버’가 아니다. 당사자들은 최저임금이 낮아 대폭 인상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최저임금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최저임금 1만원’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난해 최저임금 1만원 어젠다가 처음 등장했고 올해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을 화두로 삼았다. 내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근로빈곤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 대안이 나와야 한다. 지도가 있어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해마다 늘어나는데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이남신 최저임금 위반율(미달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올해 최저임금위가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을 여러 차례 불렀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의 위상을 보여준다. 교섭은 누가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1000만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협상에 양대 노총 위원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러면 예기치 못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대준 최저임금 미달률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저항률’이다. 사용자 25%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익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 대책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근로장려세제를 자영업자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사회보험을 지원하는 두루누리사업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위원들이 최저임금위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총사퇴를 선언했다.
김민수 고쳐 쓸 것이냐 갈아엎을 것이냐가 핵심인데, 나는 정부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위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은 불공정한 경쟁 구조, 일자리 변화 등 사회·경제 문제와 연동돼 있는데 최저임금위가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수나 학자는 이론적 토론이 가능하지만, 정치적 조정은 할 수 없다. 공익위원을 대신해 관계부처 차관들이 직접 최저임금위에 들어와 노동자, 사용자 위원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남신 현재 최저임금위 구조는 수명을 다했지만, 정부가 직접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저임금위에 당사자 대표가 더 참여하고 공익위원 추천권을 다양화해야 한다. 현재 공익위원 중에는 노동법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또 최저임금위 회의록을 공개하면 노사, 공익 대표의 책임감이 강해질 것이다. 지금은 전원회의가 열리는 내내 자료도, 의견도 내지 않는 위원도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비정규직, 청년 대표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오른쪽)과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 회의장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털어놨다.
소상공인 대표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한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20일 오후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최저임금 결정에 소상공인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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