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충남 아산시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과 가족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아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같이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고 때리면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 떨리고 긴장돼요.”
31일 현대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인 충남 아산의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 조합원 ㄱ(52)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합원 400여명과 함께 회사 쪽의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해 24일째 공장에서 파업 농성 중이다. 여느 해라면 여름휴가를 떠났을지도 모르는 이날, 조합원들의 가족들은 공장을 찾아와 농성하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집밥’을 차려줬다. 이날이 지나면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를’ 집밥이다. 경찰은 “회사 쪽에서 수차례 시설물 보호 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로 오후부터 10대 남짓의 경찰버스를 공장 주변에 배치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다.
갑을오토텍 공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회사는 지난 26일 직장폐쇄를 단행한 데 이어 1일 오후 1시 경비원 141명을 배치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비용역 투입은 지난해 회사 쪽 노조원들의 폭력으로 조합원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던 유혈사태 재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날 저녁 회사 쪽의 경비원 배치를 허가했다.
갑을오토텍 노사 갈등의 발단은 201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특전사·경찰 출신 노동자들을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채용해 별도의 수당까지 주면서 제2노조를 만들고 활동하게 했다. 법원은 박효상 당시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를 인정해 지난 15일 징역 10월에 법정구속했다. 그럼에도 회사가 특전사·경찰 출신의 신입사원 채용 취소나 2008년 단체협약에서 합의했던 경비용역 외주화 때 노사간 합의 의결 등을 이행하지 않자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갑을오토텍 사태는 ‘복수노조의 역습’의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로 2011년 7월 도입된 복수노조는 5년이 지난 지금, 일부 사용자들에 의해 ‘노조 파괴의 칼’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용자 쪽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 징계하거나 성과급 주거나 복수노조 제도하에서 일부 사업장들이 쓰는 방법은 복수노조와 차별적으로 단체교섭을 하거나 특정 노조의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개별평가로 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자동차부품회사 보쉬전장 사업장엔 2011년 11월 새로운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하면서 조합비 공제, 고용안정, 임금체계 개편, 근무시간 등에서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를 차별했다. 금속노조 간부가 차별과 감시에 대해 항의하자 해고, 정직 등의 징계까지 내렸다.
경주에 있는 자동차부품회사 발레오만도 해고자인 신시연씨는 “회사가 지원한 기업노조는 조합원이 400명에 이르렀고 기존 금속노조는 차별과 탄압을 받아 70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인사평가에 따라 성과상여금이 지급되는데 기업노조 조합원에겐 최고 등급을, 금속노조 조합원에겐 최하 등급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지만 회사는 평가기준만 변경해 계속 인사평가를 운영하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박주영 노무사는 “사용자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특정 노조를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쪽의 ‘악용’이 근본 배경이지만 노조 쪽의 ‘한계’를 반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회사의 회유나 협박에도 노동자들이 친기업 성향의 노조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노조 조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고용안정, 임금체계 등 노동자의 현실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악용 이 과정에서 대표 노조를 하나로 정해 교섭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조를 길들이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제도에 따라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사쪽과 교섭할 수 있는 대표 노조가 된다. 나머지 소수 노조는 교섭을 못 해 파업 등 쟁의도 행사하기 어렵다. 만약 각 노조가 개별적으로 교섭하려면 사용자가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현대자동차 협력기업인 유성기업의 경우 2011년 새로운 기업노조가 만들어졌지만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회사는 개별교섭에 동의해 먼저 기업노조와 합의했지만, 기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는 단협이 체결되지 않았다. 2012년 관리직이 대거 기업노조에 가입해 과반수가 되자 이번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 기업노조하고만 협상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교섭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2014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다시 과반수가 되자 회사는 개별협상으로 돌아섰다. 강성태 한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복수노조가 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하면서 부당노동행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설립에도 타격을 입혔다. 기업 내에 소수인 비정규직 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비정규직 노조 설립 움직임이 사그라들었다. 양대 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렸다. 2012년 한국노총이 “소수 노조의 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재는 “개별교섭을 허용하고 소수노조 차별을 금지한 공정대표의무 등을 두고 있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개별교섭과 교섭창구 단일화를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쪽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부당노동행위 인정…상처뿐인 승리 사쪽이 친기업 성향의 특정 노조를 지원하거나 차별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뒤늦게 인정받더라도 ‘상처뿐인 승리’다. 노-노 갈등은 첨예해져 원상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김다운 정책국장은 “두 노조가 적대적, 경쟁 관계를 형성해가면 아이들도 서로 ‘너희 아빠가 배신했다’며 손가락질할 정도로 공동체 문화가 파괴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법원은 회사가 설립·운영을 주도한 노조는 자주성이 없어 무효라는 첫 판결을 냈다. 금속노조가 유성기업과 복수노조로 설립된 유성노조(기업노조)를 상대로 낸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였다. 그러자 유성노조 위원장은 판결 닷새 만에 제3노조를 설립해 신고해버렸다. 법원이 또다시 설립 무효라고 판결할 때까지 기존 노조를 무력화할 시간을 번 셈이다. 금속노조를 변론한 김상은 변호사는 “노조가 설립 신고를 할 때 노동부가 자주성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기업이 설립·운영을 주도해 무효라고 판명되면 그 노조를 즉각 해산시키는 절차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박태우 기자, 아산/김성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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