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성과퇴출제,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확산 파견법을 반대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정부가 호봉제를 줄이고 직무급·성과급 도입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민간기업들에 배포하며,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체계 개편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노동계는 “성과연봉제를 공공기관에 이어 민간부문 전체로 확산시켜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의도”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17일 임금체계 방향과 방법을 알기 쉽게 소개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가이드북은 “연공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며, 비정규직화, 하도급화 등 고용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연공성을 완화하고 직무·능력·성과 등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라”고 제시했다. 근무연차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연공급(호봉제)을 직무급(직무 특성), 직능급(숙련도), 역할급(직위), 성과급(성과)으로 전환하라는 취지다. 고용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00인 이상 사업체 가운데 호봉급을 채택한 사업체는 65.1%다. 3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초임자의 3.28배로, 일본의 2.46배, 독일의 2.10배보다도 훨씬 높다는 것이 고용부의 주장이다.
가이드북은 연공 중심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노조와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지만, 노조가 끝내 임금체계 개편을 거부할 경우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한 ‘취업규칙 운영지침’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취업규칙은 채용·인사·해고 등과 관련된 사내규칙을 말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북은 “임금체계 개편이 불이익 변경인 경우 근로자 과반수나 과반수 노조의 동의가 없더라도 법률과 판례에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효력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2013년 정년 60살 의무화가 입법화되면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한데다, 임금 총액이 유지되며 직무·능력·성과 중심으로 임금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1997년 금융위기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변경의 효력을 인정했다”며 “임금체계 개편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정부의 압박 탓에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노조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노조가 기관장을 고소하는 등 노사가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이드북은 임금개편 절차를 설명할 때도 노사 협의를 마지막 단계로 제시했다. “임금체계를 변경하려면 가장 먼저 임금 구성의 문제점을 진단한 뒤 어떤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적합한지 분석하고 개편 방식을 결정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자나 노조와의 협의는 “개편안 마련 이후”로 못박았다.
양대 노총은 크게 반발하며 가이드북을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직무·성과급 임금체계는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노조의 임금협상 기능을 무력화하며 상시적 퇴출 효과까지 노리는 구조조정 정책”이라며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강제 적용한 데 이어 민간부문 전체로 확산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김준영 대변인은 “임금체계 개편 가이드북은 고용부가 올해 초 내놓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치침'의 연장선”이라며 “노조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을 일방적으로 도입한 노조들이 앞장서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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