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 송민수 전문위원 보고서
구성원끼리 경쟁 심해지며 관계악화
남성·정규직보다 여성·비정규직이
나이·학력 낮을수록 괴롭힘에 노출
“객관성·공정성 없으면 협력문화 해쳐”
구성원끼리 경쟁 심해지며 관계악화
남성·정규직보다 여성·비정규직이
나이·학력 낮을수록 괴롭힘에 노출
“객관성·공정성 없으면 협력문화 해쳐”
증권회사에 다녔던 ㄱ씨는 회사를 떠나기 전 ‘성과관리 프로그램 대상자'였다. 그는 겨울 산을 홀로 오르거나 사회봉사한 뒤 셀카를 찍어 회사에 보내야 했다. 외형상 저성과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실상은 직원을 들들 볶아 제 발로 나가게 하는 ‘퇴출 프로그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프로그램의 1단계는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수치감에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티면 각종 수당을 깎는 2단계로 접어든다. 기본급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이들이 회사를 떠난다. 그래도 남으면 산행이나 사회봉사처럼 성과를 낼 수 없는 곳으로 보내 다시 저성과자로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ㄱ씨가 무너진 것은 동료들 때문이었다. “악독한 상사의 ‘내리 갈굼'은 견디겠는데 동료들이 내 탓이라며 눈치를 주며 ‘왕따’를 시키는 데 절망했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중에서)
성과평가가 일터 괴롭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리뷰 10월호'에 수록된 송민수 전문위원의 보고서 ‘직장 내 괴롭힘 영향요인: 피해자, 사업체, 근로환경 특성을 중심으로'를 보면, 성과평가 등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근무환경이 언어폭력, 성적 관심, 위협·굴욕적 행동,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4년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토대로 일터 괴롭힘의 영향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이 보고서는 일터 괴롭힘 영향요인을 피해자와 근로환경으로 나눠 파악했다.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았다. 또 연령과 학력이 낮을수록 일터 괴롭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근로환경은 열악할수록 괴롭힘이 증가했다. 저녁근무(저녁 6시 이후 2시간 이상)를 많이 하는 직장일수록, 마감시간이 엄격한 근무환경일수록, 공식적 성과평가가 존재하는 직장일수록 언어폭력 등 일터 괴롭힘을 노동자가 경험할 가능성이 커졌다. 조사 대상자의 한 달 평균 저녁근무 횟수는 4.78일로 나타났고, 마감 시간이 있는 노동자의 비중은 26.2%였다. 또 근무성과를 공식적으로 평가받는 경우는 25.9%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저녁근무는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협업을 통해 마감 시간 내 업무를 마쳐야 하는 상황에선 미숙련 노동자가 괴롭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성과평가가 강화되면 구성원들이 극심한 경쟁구도에 놓여 다른 근로자를 동료가 아닌, 경쟁해서 이겨내야 할 상대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인식이 퍼지면 가해자들이 조직 내 생존을 위한 방어 수단으로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보통 성과급체계는 성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임금체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조직 내 위화감을 조성하고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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