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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부익부 빈익빈은 독일도 뜨거운 이슈죠”

등록 2016-10-19 18:23수정 2016-10-19 21:02

[짬] 독일 사회복지 전문가, 아이헨호퍼 교수
에버하르트 아이헨호퍼 전 예나대 교수.
에버하르트 아이헨호퍼 전 예나대 교수.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에도 비교적 경제도 안정적이고 복지 수준도 괜찮게 유지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근년 들어 ‘독일 붐’이 일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독일을 배우자’며 베를린 등지를 찾았다.

하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상반되는 움직임이 있었다. 독일 언론과 싱크탱크들은 오히려 독일 경제의 뒤에 가려져 있는 그늘로 사회적 양극화를 잇따라 제기했다. 에버하르트 아이헨호퍼(66) 전 예나대 교수도 이런 견해에 서 있는 독일 지식인이다. 국제심포지엄 참석 차 서울을 찾은 그를 지난 16일 머무는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하게 되는 현상이 독일에서도 가속화하고 있다”며 “사회적 양극화는 독일 사회에서 지금 뜨거운 이슈”라고 전했다. 올해 2월 예나대를 끝으로 교수직을 은퇴한 그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회보장법학회·한국보건사회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독일의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보장법’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올 2월 예나대서 퇴임한 법학자
독 사회 양극화 주제발표차 방한

“상위 10%, 소득 40 자산 90% 차지
독일 사회, 아직 해결책 못 찾아
최저임금 등의 적정화도 대안
기본소득 바람직하나 도입 힘들듯”

-한국에는 독일을 ‘롤모델 국가’로 여기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많다. 그런데 독일의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은 사회적 양극화의 심각성을 말한다. 독일에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이슈인가?

“사회적 양극화는 소득, 자산 및 생활조건에서의 불균형 증가를 말한다. 지금 독일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관점에서 보면 물론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성과는 비교적 좋다. 청년 실업률이 낮고 누구나 음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사회지출도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유럽에서 평균 수준을 보인다. 하지만 지난 50년간의 추세를 보면 그렇지 않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 왔다.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3년의 한 통계를 인용하면, 상위 10%가 자산의 90%, 소득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하위 10%는 자산의 2%, 소득의 4%만 차지할 뿐이다.”

독일 언론 <슈피겔>은 이달 10일치에서 독일의 부자와 빈자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등 사회적 불평등이 공고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독일 통계청의 통계를 확인해보니, 지니계수는 2009년에 2.91이었으나 2014년에는 3.07로 악화했다. 빈곤율(중위소득 60% 미만의 비중)도 같은 기간에 14.6%에서 15.7%로 더 커졌고, 반면 고소득자의 비중(중위소득 200% 이상 소득자의 비중)은 2009년 7.8%에서 8.2%로 높아졌다.

-이런 문제에 대해 독일 사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해결책을 잘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와 녹색당 등은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최저임금(2015년부터 시행된 독일 최저임금은 시간당 8.50유로, 약 1만600원이었다) 도입 논의 당시, 이 제도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사용자 단체 등의 반대가 있었지만, 거꾸로 일자리는 더 늘고 임금인상 효과가 있는 등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임금이 늘면 소득이 늘고 이에 따라 세금도 증가하며, 이 늘어난 세금으로 실업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 지원을 늘릴 수 있다. 최근엔 기업 상속에 대해 세율을 더 높이자는 여론이 일고 있는데, 지지한다. 현재 그림은 높은 상속세를 매기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기업을 상속할 경우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한때 사회적 시장경제의 나라로 유명했으나, 1990년대 중반 이래 달라진 측면이 있다. 노동시장과 복지 측면에서 민영화, 규제 철폐, 비정규직의 증가를 불러올 여러 조처를 꾸준히 취해왔다.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엇갈리겠지만 현재 독일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파견근로가 증가하는 등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인력 수급과 학교 교육의 불일치가 문제다. 이공계 학생이 줄어들면서 숙련된 엔지니어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혹은 환경 문제로 화학산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일자리의 상당수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다.”

-복지국가는 오늘날 저출산고령화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 대안의 하나로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나?

“독일에서도 주요 의제다. 쟁점이 많은 데 비해 비판은 적다. 난 이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철학적·이념적 측면에서 바람직해도 현실에서는 몇 가지 점에서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선 국민이 정확히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단순한 것도 문제다. 모두에게 획일적이란 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어느 수준에서 보장할 것인가를 아무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가정 아래 이런 논의를 펼치는데, 나는 일자리는 늘 그래 왔듯이 다른 일자리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로봇 시대가 되어도 없어지는 일자리도 있지만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회보장법을 오랫동안 연구한 법학자답게 기본소득에 대해선 다소 ‘보수적 견해’를 내비친 아이헨호퍼 전 예나대 교수는 18일 주제 발표에서 사회보장의 한계와 가치에 대해 의미심장한 견해를 내비쳤다. “사회보장은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할 수는 있지만 이를 극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모든 수단들은 사회보장의 효율성과 성과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유익하다.”

글·사진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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