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7일 노조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의 장례식이 그가 숨진 지 353일 만인 지난 4일 충북 영동과 서울, 천안에서 12시간 동안 열렸다. 한씨가 일하던 유성기업 영동공장 생산라인에 형 국석호씨가 영정사진을 들고 서 있다. 충북 영동/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지난 4일 오전 7시께 충북 영동군 유성기업 영동공장으로 가는 도로. 금속노조 유성 영동지회 조합원 고 한광호씨 장례식 운구행렬이 청아한 조종 소리와 함께 ‘마지막 출근길’에 나섰다. 21년간 일하던 일터로 가는 길은 유성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형 국석호씨가 영정을 들고 앞장섰다. 상복을 입은 동료 100여명은 ‘열사정신 계승’이라는 검은 머리띠를 두르고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의 손엔 “노조파괴 분쇄” “심야노동 철폐” “민주노조 사수“ ”정몽구 구속”이라는 검은 만장이 들려 있었다.
회사의 노조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씨의 장례식 ‘노조파괴 없는 세상, 한광호 열사 민주노동자장’이 그가 숨진 지 353일 만에 열렸다. ‘노동운동 최장기 열사 투쟁’이라는 슬픈 기록을 남긴 장례식은 충북 영동과 서울, 천안에서 12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날 오전 6시께 영동병원 장례식장 발인에 이어 그가 1995년, 스물한 살부터 일해온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영정 속 한씨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21년간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던 공장”에 들어섰다. 텅 빈 공장에 멈춰진 기계 사이로 짙은 기름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자동차 부품 생산라인, 그의 자리에 서서 한 동료가 말했다. “1년간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분노를 참고 싸워왔다. (노동)조합은 더 단단해졌다. 그 힘으로 유시영(유성기업 회장)을 구속했다.”
현대자동차 부품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의 유시영 회장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제2노조(어용노조)를 설립하고, 금속노조를 파괴하려한 혐의로 지난달 17일 법정구속됐다. 노조파괴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만이었다. 2011년 5월 금속노조 유성영동·아산지회가 파업에 돌입하자 유성기업은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경비용역을 동원해 공장 안에 있던 노조 조합원을 끌어냈다. 그 사이 어용노조를 설립하게 한 뒤 조합원을 차별하며 ‘노노 갈등’을 부추겼다. 금속노조 조합원을 27명이나 해고했다.
한씨의 형 국석호씨도 이때 해고돼 6년간 복귀하지 못했다. 국씨는 “거리에서 노숙하고 며칠에 한 번씩 집에 가서 애들 얼굴을 보고, 어머니 얼굴을 한 번 뵀다. 내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회사로 복귀한 노조원도 “출근할 때마다 마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나날을 보냈다. 회사 쪽은 징계와 임금삭감, 고소·고발을 일삼고 공장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했다. 조합원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황폐해졌다. 주요 우울장애 고위험군이 43.3%(한국 성인 평균 6.7%), 외상 후 스트레스 고위험군이 53.5%, 사회심리 스트레스 고위험군이 64.5%에 달했다. 한씨도 고위험군에 속했다. 노조 탄압에 맞서며 5차례 고소·고발, 2차례 부당 징계를 받은 데 이어 2016년 3월10일 한씨는 야간 근무를 하다가 세 번째 징계 통보를 받았다. 닷새 뒤 그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틀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김성민 유성 영동지회 지회장은 한씨를 “가장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가장 어려울 때 간부를 자처했고, 누구도 가려 하지 않는 곳을 먼저 찾아갔다. 남은 몇 안되는 사진엔 그가 항상 가장자리에 있었다. 가장 빛나고 싶은 시절에도 가장 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태워 우리를 밝혀줬다.” 한씨가 숨진 뒤 금속노조 등은 한광호 열사 투쟁대책위원회를 꾸려 노숙 농성, 단식 농성, 청와대를 향한 오체투지 등을 통해 유시영 회장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노조파괴 피해 원상회복 등을 요구해왔다. 그 사이 한씨는 지난해 10월 산재 승인을 받았고 어용노조는 무효가 되고 유 회장이 법정구속됐다. 국석호씨는 “(그러나) 동생은 없다. 동생을 차가운 냉동고에서 1년 가까이 안치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3월17일 노조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의 영결식이 그가 사망한 지 353일 만인 지난 4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열렸다. 상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정몽구 구속’ 등이라 적은 검은 만장을 들고 운구차량을 뒤따르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제공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한씨의 운구차량은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로 향했다.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양재동 에이티센터에서 현대자동차 본사까지 행진한 뒤 이곳에서 영결식을 열었다. 현대차는 하청기업인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유 회장의 판결문 등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영결식에서 동료 노동자들은 고인의 넋을 기리며 ‘정몽구 구속’ 등 남겨진 과제를 다짐했다. “353일, 이제 열사를 보내려 한다. 하지만 노조파괴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시작일 뿐, 못다 이룬 노조파괴 없는 세상은 이제 남은 우리가 만들어가자.” (김성민 지회장) 영결식 마지막 순서로 조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현대차 본사 앞 도로에 울려 퍼졌다. 한씨는 충남 천안 풍산공원묘역에 묻혔다. 충북 영동/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