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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조선업 퇴직자 “경력 30년인데 최저임금이라니…”

등록 2017-03-12 20:32수정 2017-03-12 21:48

[현장] 울산 채용박람회

무더기 구조조정 뒤 첫 행사
정규직 출신 구직자들 두번 울려
‘소모품’ 취급에 자존심 상처

업체 62곳 대부분 최저임금 제시
1200명 몰렸지만 1~2명 채용
오후 3시, 대부분 부스 문닫아
조선업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첫 채용박람회가 지난 10일 울산시 동구 전하체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참여한 구직자 1200여명 가운데 41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고용노동부 제공
조선업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첫 채용박람회가 지난 10일 울산시 동구 전하체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참여한 구직자 1200여명 가운데 41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고용노동부 제공
“빈껍데기다.”

지난해 9월 조선업 구조조정 사태 당시, 현대중공업에서 34년간 일하다가 희망퇴직한 김아무개(59)씨는 지난 10일 ‘2017 조선업 퇴직자 채용박람회’에 참석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업체 대부분이 최저임금(시급 6470원) 수준을 내놓고 있었다. 김씨는 “기술이 좋은 사람도 최저임금 받으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채용 부스 중) 서너군데 앉아봤는데 사람을 정말 구하겠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억지로 끌려와서 자리만 채워주고 있는 듯했다.” 7개월 만에 처음 일자리를 찾으러 나왔던 김씨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다.

울산 조선업희망센터와 울산 고용복지센터가 지난 10일 울산시 동구 전하체육센터에서 조선업 퇴직자를 대상으로 첫 채용박람회를 열었다. 이날 ‘대통령 파면’ 소식이 전해지자 구직자들은 “경제가 되살아나는 것이냐”고 묻는 등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궁금해했다. 지역 중소기업 62곳(이중 13곳은 한 채용대행업체를 통해 참여)과 구직자 1200여명이 참여해 41명이 현장에 채용됐고, 90여명은 2차 면접을 받기로 했다.

이날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은 대부분 현대중공업 정규직 출신이라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명예퇴직한 김아무개(59)씨는 “경력이 30년인데 최저 시급을 받으라니, 기량은 빼먹고 돈은 안 주겠다는 심보 아니냐. ‘당신들 어디 가서 일할 데 있어? 이거라도 받고 일해라’라고 비웃는 것 같은데, 자존심 상해서 일 안 한다”고 말했다.

2015년에 정년퇴직한 이아무개(62)씨는 이날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냈다가 ‘소모품’ 취급을 당했다. “딱 물어보는 말이 ‘회사에서 필요 없어서 나가라고 할 때 아무 얘기 안 하고 바로 나갈 수 있어요?’더라.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취업이 안되는 거다. 조선업이 어렵다 보니까 이런 취급까지 당한다.”

이날 취업박람회의 모집직종은 조선업 하청업체, 기계·자동차 조립업체, 지게차·굴삭기업체, 물류업체 등 조선업 관련업체도 있었지만, 간호조무사, 간병사, 미화원, 전통음식생산, 아파트택배, 중식당 홀서빙, 바리스타 등 전혀 관련 없는 분야도 눈에 띄었다. 모집인원은 분야별로 1~2명에 그쳤고, 10명 이상을 채용하는 곳은 손으로 꼽혔다.

구직자는 많고 일자리는 적으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구직자도 있었다. 석아무개(63)씨는 2014년에 정년퇴직한 뒤 하청업체에서 지난 2월까지 2년간 일했다. 현대중공업 배관 분야에서 36년간 일하며 연봉 1억원까지 받아봤지만, 하청업체에선 월 180만원을 겨우 손에 쥐었다. 그마저도 일거리가 없어져 이번달부터는 쉬고 있다. 이날 석씨는 낮은 임금도 괜찮다고 이력서를 몇 군데 냈지만 회사 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장이 60살까지만 뽑으라고 했다더라. 원서는 겨우 내고 왔는데 별로 희망을 걸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부장, 부서장 출신들도 많이 왔던데 할 것 없다고 다들 그냥 돌아갔다.”

지난 10일 울산시 동구 전하체육센터에서 열린 조선업퇴직자 채용박람회는 오후 3시께 대부분 채용 부스를 닫았다. 채용인원이 워낙 적어서 필요 인력을 몇 시간 만에 다 채웠기 때문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지난 10일 울산시 동구 전하체육센터에서 열린 조선업퇴직자 채용박람회는 오후 3시께 대부분 채용 부스를 닫았다. 채용인원이 워낙 적어서 필요 인력을 몇 시간 만에 다 채웠기 때문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가업체는 이날 오후 3시께 대부분 채용 부스를 닫았다. 채용 인원이 워낙 적어서 필요 인력을 몇 시간 만에 다 채웠기 때문이다.

조선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김아무개(51)씨는 오후 3시30분께 박람회를 방문했는데, 참가업체 대부분이 ‘자리비움’ ‘종료되었습니다’ 명패를 두고 자리를 뜬 이후였다. “일 끝내고 부랴부랴 왔는데 (채용 부스가) 텅 비어 있어서 황당하다. 기성비(원청이 하청에게 주는 공사대금)가 잘 나오지 않아서 옮겨볼까 했는데.” 김씨는 조선업 불황으로 하청업체 노동자가 더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데, 채용박람회는 정규직 중심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조선업 구조조정의 고통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수주절벽’이 본격화한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가 ‘방패막이’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노동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12월 현재 원청 노동자는 2만508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2만7683명이다. 2015년 1월과 비교하면, 원청은 5650명, 하청은 1만3100명이 줄었다. 일자리를 겨우 유지하더라도 사내하청 노동자는 무급휴직, 임금삭감, 퇴직금 없는 근로계약 갱신 등을 강요받고 있다.

조선업 하청업체 노동자 김아무개(37)씨는 “잔업이나 특근은 꿈도 못 꾸고 일감이 없다고 (회사가) 수시로 쉬라고 한다”고 말했다. 월급은 반 토막으로 줄어 200만원 안팎이다. 그러나 다른 하청업체도 사정이 비슷한 상황에서 멋모르고 움직였다가는 퇴직금도 못 받는 1년 미만의 쪼개기 근로계약서를 쓰는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김씨는 “길거리에서 취업박람회 현수막을 봤지만 방문할 생각도 못했다”며 “부업으로 할 아르바이트 일거리라도 찾아서 세 아이 학원비를 보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조선업 하청업체에서 2년간 도장 일을 하다가 재취업을 준비 중인 황아무개(29)씨는 다시 조선업 쪽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이 힘든데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작업환경이 나쁘고 몸도 망가지지만,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직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희망이 사라졌다.”

앞서 지난 9일 울산 동구의 현대호텔에서 열린 ‘2017 조선업 퇴직자 고용전략포럼’에선 정부의 조선업 지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지만,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산지역의 지난해 12월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현황을 보면, 조선업 불황으로 지역경제가 어려운데도 지원 인원(3271명)과 금액(46억1050만7000원)은 전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부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요건이 까다로웠던 것이 주요인이라고 분석하고, 무급휴직 최소 실시 기간을 90일에서 30일로 줄이고, 무급휴직의 사전요건인 유급휴업기간 등도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는 등 이번달부터 지원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울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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