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국제가사노동자연맹 빗보이 위원장
홍콩에 본부를 둔 국제가사노동자연맹은 4년 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출범 때 25만명이던 회원은 지금 60만명이 됐다. 설립 이후 가사노동자가 직접 조직을 꾸리거나 목소리를 내어 노동권 보호를 받도록 하는 데 활동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사노동자는 6710만명이며, 이 가운데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이주 가사노동자는 1150만명으로 파악된다. 제20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이 연맹의 머틀 빗보이(70) 위원장이 13일 방한했다. 그를 이날 저녁 서울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만났다.
연맹 대표로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
ILO 가사노동자 협약 채택에 큰몫 19살부터 13년간 가사노동자 생활
‘주인집’ 창고서 동료 교육해 조합 결성
쇠사슬로 의회 봉쇄 등 맹렬투쟁
최저임금·주5일 근무 법제화 달성 빗보이 위원장은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19살 때 케이프타운의 유대계 백인 가정의 입주 가사노동자로 취업했다. 원래 꿈은 간호사였다. 당시 남아공의 악명 높은 흑백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꿈을 가로막았다. “간호대에 들어가려면 어느 부족인지 명확히 쓰인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어요. 그때 제 신분증엔 ‘혼혈 유색인’으로만 표기돼 입학 허락을 받지 못했죠.” 대신 가사노동 현장에서 뜻을 펼쳤다. 그는 다른 가사노동자들과 달리 영어를 쓰고 읽을 줄 알았다. 가사노동 2년차 때 동료 노동자 250여명을 모아 노동자의 권리 실현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가사노동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간이었다. 금쪽같은 이 시간을 내어 그가 입주한 집에 딸린 창고에 모인 것이다. 그를 이런 활동으로 이끈 촉매제는 가사노동자를 하인이라고 부르며 모욕한 집주인 이야기를 실은 신문 보도였다. 기사를 보고 분노를 담은 글을 써 신문사에 보냈다. 이 글이 주목을 받았다. 기자가 빗보이를 취재해 ‘똑똑한 메이드(가정부), 그들의 목소리를 내다’란 제목의 기사를 썼을 정도였다. “제 이야기를 쓴 기자가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을 먼저 제안했어요. 제가 너무 유명해져 집주인도 창고 교육을 막기 힘들었어요.” 가사노동자 13년, 공장 노동자 7년의 세월을 거쳐 85년엔 ‘남아공 가사노동자 조합’을 탄생시켰다. 이 단체는 2000년 ‘남아공 가사노동자와 협력노동자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이 조합과 함께 눈부신 성취를 거뒀다. 남아공은 1994년 민주화 이후에도 가사노동자는 노동법 보호의 사각지대였다. 그는 맹렬히 싸웠다. 동료들과 함께 남아공 의회 정문을 하룻밤 동안 쇠사슬로 봉쇄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2005년 가사노동 부분에 최저임금(당시 월 70달러) 제도를 도입했다. 주 5일 근무와 병가 등도 법제화했다. 가사노동자가 실업급여 대상에도 포함됐다. 이어 국제 연대 활동에 나선 것도 이런 성공을 다른 나라로 확산시키고 싶어서다. 2008년 소수의 활동가들과 함께 연맹의 전신인 국제가사노동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단체의 적극적인 청원 등이 결실을 맺어 국제노동기구(ILO)는 2009년 가사노동을 노동의제에 포함시키고 2년 뒤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가사노동자에게 노동자 지위를 부여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협약 채택 뒤) 네트워크를 연맹 조직체로 탈바꿈시켜야겠다고 맘먹었어요. 협약은 실현되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연맹 구성이 제대로 될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했다. “(연맹 추진 인물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고, 다 여자여서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죠. 연맹 창립으로 이런 우려를 떨쳐냈죠.” 협약은 현재 남아공, 필리핀 등 23개 나라가 비준했다. 한국은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협약 비준도 하지 않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비준하도록 국제노동단체들과 공동캠페인을 펼치고 있어요. 가사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이면서 여성 노동자이기도 해요. 국제노동기구가 가사노동 문제를 적극 의제로 다뤄야 합니다.” 중동 지역의 가사노동 보호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의 가사노동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브로커가 여권을 압수해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연맹이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죠.” 연맹엔 노동조합 성격의 단체 13곳이 가입해 있다. 한국은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회원 단체다. 연맹은 100만 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세계 가사노동자 수에 견주면 많지 않은 수다. “최근 레바논에서 가사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는데 한 달 만에 와해됐어요. 노조원 대부분이 노조 결성 권리가 없는 이주노동자였거든요. 미국도 가사노동자의 90%가 이주노동자인데, 최근 추방 위기에 몰려 있어요. (가사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를 하기가 어려운 여건입니다.” 그는 “협약을 비준한다고 하더라도 국내법으로 보호조항을 만들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면서도 “협약 채택 이후 전세계의 가사노동자 권익 보호가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머틀 빗보이 국제가사노동자연맹 위원장.
ILO 가사노동자 협약 채택에 큰몫 19살부터 13년간 가사노동자 생활
‘주인집’ 창고서 동료 교육해 조합 결성
쇠사슬로 의회 봉쇄 등 맹렬투쟁
최저임금·주5일 근무 법제화 달성 빗보이 위원장은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19살 때 케이프타운의 유대계 백인 가정의 입주 가사노동자로 취업했다. 원래 꿈은 간호사였다. 당시 남아공의 악명 높은 흑백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꿈을 가로막았다. “간호대에 들어가려면 어느 부족인지 명확히 쓰인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어요. 그때 제 신분증엔 ‘혼혈 유색인’으로만 표기돼 입학 허락을 받지 못했죠.” 대신 가사노동 현장에서 뜻을 펼쳤다. 그는 다른 가사노동자들과 달리 영어를 쓰고 읽을 줄 알았다. 가사노동 2년차 때 동료 노동자 250여명을 모아 노동자의 권리 실현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가사노동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간이었다. 금쪽같은 이 시간을 내어 그가 입주한 집에 딸린 창고에 모인 것이다. 그를 이런 활동으로 이끈 촉매제는 가사노동자를 하인이라고 부르며 모욕한 집주인 이야기를 실은 신문 보도였다. 기사를 보고 분노를 담은 글을 써 신문사에 보냈다. 이 글이 주목을 받았다. 기자가 빗보이를 취재해 ‘똑똑한 메이드(가정부), 그들의 목소리를 내다’란 제목의 기사를 썼을 정도였다. “제 이야기를 쓴 기자가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을 먼저 제안했어요. 제가 너무 유명해져 집주인도 창고 교육을 막기 힘들었어요.” 가사노동자 13년, 공장 노동자 7년의 세월을 거쳐 85년엔 ‘남아공 가사노동자 조합’을 탄생시켰다. 이 단체는 2000년 ‘남아공 가사노동자와 협력노동자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이 조합과 함께 눈부신 성취를 거뒀다. 남아공은 1994년 민주화 이후에도 가사노동자는 노동법 보호의 사각지대였다. 그는 맹렬히 싸웠다. 동료들과 함께 남아공 의회 정문을 하룻밤 동안 쇠사슬로 봉쇄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2005년 가사노동 부분에 최저임금(당시 월 70달러) 제도를 도입했다. 주 5일 근무와 병가 등도 법제화했다. 가사노동자가 실업급여 대상에도 포함됐다. 이어 국제 연대 활동에 나선 것도 이런 성공을 다른 나라로 확산시키고 싶어서다. 2008년 소수의 활동가들과 함께 연맹의 전신인 국제가사노동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단체의 적극적인 청원 등이 결실을 맺어 국제노동기구(ILO)는 2009년 가사노동을 노동의제에 포함시키고 2년 뒤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가사노동자에게 노동자 지위를 부여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협약 채택 뒤) 네트워크를 연맹 조직체로 탈바꿈시켜야겠다고 맘먹었어요. 협약은 실현되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연맹 구성이 제대로 될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했다. “(연맹 추진 인물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고, 다 여자여서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죠. 연맹 창립으로 이런 우려를 떨쳐냈죠.” 협약은 현재 남아공, 필리핀 등 23개 나라가 비준했다. 한국은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협약 비준도 하지 않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비준하도록 국제노동단체들과 공동캠페인을 펼치고 있어요. 가사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이면서 여성 노동자이기도 해요. 국제노동기구가 가사노동 문제를 적극 의제로 다뤄야 합니다.” 중동 지역의 가사노동 보호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의 가사노동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브로커가 여권을 압수해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연맹이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죠.” 연맹엔 노동조합 성격의 단체 13곳이 가입해 있다. 한국은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회원 단체다. 연맹은 100만 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세계 가사노동자 수에 견주면 많지 않은 수다. “최근 레바논에서 가사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는데 한 달 만에 와해됐어요. 노조원 대부분이 노조 결성 권리가 없는 이주노동자였거든요. 미국도 가사노동자의 90%가 이주노동자인데, 최근 추방 위기에 몰려 있어요. (가사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를 하기가 어려운 여건입니다.” 그는 “협약을 비준한다고 하더라도 국내법으로 보호조항을 만들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면서도 “협약 채택 이후 전세계의 가사노동자 권익 보호가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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