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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고용부, 임금 체불한 롯데시네마·CGV에 “개선 노력 고무적”

등록 2017-03-23 15:06수정 2017-03-23 15:28

[현장에서]
고용부 근로감독 보도자료 보니
‘강력 비판’했던 이랜드와는 달리
대기업 영화관들 땐 위반사항보다
‘자체 개선노력’ 집중적으로 소개
지난 2일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본사 앞에서 롯데시네마의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꺾기’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알바노조 제공
지난 2일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본사 앞에서 롯데시네마의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꺾기’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알바노조 제공

지난해 11월 애슐리 등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이랜드파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임금 84억원을 체불한 사실이 밝혀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근로감독 과정에서 임금 지급을 위한 노동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지 않고 15분 단위로 하는 ‘시간 꺾기’나 먼저 퇴근하도록 한 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내용이 적발돼, 임금체불 문제는 이랜드 경영진의 ‘도덕성’ 문제로 옮겨갔고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랜드파크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관련 법규를 준수하겠다는 다짐을 내놓기도 했다.

이랜드파크의 근로감독 결과를 담은 고용노동부 보도자료의 제목은 ‘고용노동부, 유명 프랜차이즈 대표 입건 등 감독결과 발표-직영점 360개 매장에서 4만4천여명에게 금품 84억여원 미지급’이었다. 보도자료엔 “많은 청소년이 일하고 싶어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기본적인 근로조건을 모범적으로 지켜야 함에도 이렇게 근로기준법을 다수 위반한 것은 기업의 부끄러운 후진적 관행으로 이와 같은 사례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정하게 처리할 계획”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고용부의 태도는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고용부는 올해 주요한 업무목표로 ‘기초고용질서 확립’을 들고 있다. 임금체불에 대해선 엄벌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지난 1월15일 <연합뉴스>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청년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영화관 등의 '시간 꺾기' 등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뿌리 뽑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의지를 담아 고용부는 롯데시네마·메가박스·씨제이 씨지브이(CJ CGV)를 대상으로 기획 근로감독한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이들 영화관이 지키지 않은 근로기준법은 이랜드파크와 대동소이하다. 전체 300개 상영관 가운데 48개 영화관을 감독(이 장관의 “모든 행정력동원”과는 거리가 있다)한 결과 213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고, 201건에 대해 시정지시, 8건은 과태료 부과, 4건에 대해선 형사처벌 하기로 했다. 영화관 44곳에서 모두 3억6400만원의 임금이 체불됐는데, 이랜드파크처럼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7361명 2억8800만원), 영화관 사정으로 조기 퇴근하는 경우에도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고(700명 3200만원), 한달 개근에 발생한 연차수당(332명 2300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도자료의 내용은 이랜드파크 때와 사뭇 달랐다. 보도자료는 ‘3대 영화상영사, 고용구조·근로조건 개선에 적극 나서기로-간접고용 근로자 직접 고용, 전 상영관 근로조건 자율시정,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 선진화 등’라는 제목 하에 “이번 감독 결과 주요 영화관에서 그간의 노무관리 문제점을 개선함은 물론, 고용구조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이 같은 사례가 확산되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근로감독 이후 3대 영화관 임원진과 지난 17일 간담회를 가졌는데, 여기서 업체들은 이들이 각자 마련한 개선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그 개선계획을 4장짜리 보도자료 대부분을 할애하여 고용부가 대신 소개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300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메가박스는 ‘직영점에 근무 중인 하청노동자 1500명 전원을 7월부터 직접 고용키로 했다’, 씨제이 씨지브이는 ‘올해 안으로 청년 알바생 100명을 풀타임 관리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업체들이 복리후생 제고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이들의 ‘개선노력’ 가운데 일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기업들 스스로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히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 결과, 고용부가 같은 사안에 대해 이랜드는 “대기업의 부끄러운 후진적 관행”이라며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히고, 이랜드보다 규모가 큰 대기업 계열 영화관에 대해서는 자체 ‘개선노력’을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며 보도자료를 통해 대신 알려준 모양새가 됐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감독이 하나의 칼이긴 하지만 그 칼을 쓰는 이유는 잘못된 것을 고치고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고, 기업들의 좋은 사례를 전파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감독은 엄정하게 시행하되 개선노력 역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며 보도자료의 ‘태도 변화’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과연,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임금을 제대도 주지 않는 “후진적 관행”이 대기업들이 ‘좋은 사례’를 몰랐기 때문인 걸까? 과연 대기업들이 법을 몰라서, 좋은 사례를 몰라서 임금을 체불하고 간접고용하는 것일까? 고용부가 대기업들이 근로감독에서 적발되자 마련한 ‘개선대책’을 법 위반 사항에 앞서 대신 알려주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까?

고용부가 알렸어야 할 내용은 대기업들의 법 위반사항과, 이에 따른 고용부의 조처·권고사항이면 족하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위반사항에 대한 반성과 개선계획을 직접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소비자에게 잃은 신뢰를 다시 얻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고용부가 보도자료를 쓰면서, 개선계획의 원인이 된 근로감독 내용은 저 뒷장으로 보내놓고 개선내용을 앞세워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들이 원하는 고용부의 모습은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한 엄벌과 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일 게다. 불법이 판치는 일터를 바로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좋은 사례’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안 지키면 저렇게 호되게 당하는구나”라는 정부의 ‘경고’다. 정부가 늘 강조하는 것이 ‘법치’ 아니었던가.

지난해 11월 임금체불 관련 취재 도중 이랜드파크 관계자는 “우리는 다른 재벌 대기업처럼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기회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통상 규모가 있는 재벌 대기업들은 정부를 상대로 ‘의견’을 전하는 이른바 ‘대관’ 직원들이 있는데, 이랜드는 그런 직원을 두고 있지 않아 ‘관리’가 불가능했다는 말로 들렸다. 이번에 감독 대상이 된 영화관 가운데 두 곳은 이른바 ‘재벌’ 계열사다. 고용부의 태도 변화가 ‘재벌 대기업’의 ‘억울함 호소’ 때문이 아니었길 바란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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